과학으로 영생하는 인간… ‘튜닝의 끝’ 은 무엇인가[북리뷰]

박동미 기자 2024. 3. 2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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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모 엑스 마키나
베른트 클라이네궁크·슈테판 로렌츠 조르그너 지음│박제헌 옮김│와이즈베리
항노화 전문가·니체연구 철학자
나노기술·유전공학 등 사례들어
트랜스 휴머니즘의 명과암 짚어
머스크의 ‘뉴럴 링크’ 프로젝트
미국 ‘냉동인간 서비스’ 회사 등
인류의 한계 넘는 연구들도 주목

‘과학 기술로 인간의 정신적·육체적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말은 21세기 인류의 삶에 기본 전제 같다. 그러나 만일 당위성이 부여된다면? ‘과학 기술을 이용해 인간을 최대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문화적 운동, 이른바 ‘트랜스휴머니즘’을 논한다면 말이다. ‘인간 강화’의 끝은 어디일까. 결점을 극복하고 좋은 것만을 취해,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건강하며 늙지 않고, 수명을 연장한다. 어쩐지 나치의 정치 구호에 근거가 돼 준 ‘악랄한’ 우생학과 닮은 듯하고,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불경한 짓처럼 느껴진다. 즉, 다분히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으로 수렴되거나….

세계적인 항노화 전문가와 니체를 연구한 철학자가 함께 쓴 책 ‘호모 엑스 마키나’는 트랜스휴머니즘은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이것은 ‘과학적 사고’를 단단하게 딛고 서 있는 철학 운동이다. 또한, 자신을 초월하려는 인간의 오랜 욕망과 의지가 반영된 ‘새로운 진화’의 단계다. 한마디로 ‘인간이 인간을 창조하고 진화시키는 과정’. 저자들은 근거와 기원을 좇은 후, 다시 기회와 위험성을 짚는다. 과학 교육을 받은 의사(베른트 클라이네궁크)와 철학 지식을 갖춘 정신 과학자(슈테판 로렌츠 조르그너)의 대화. 같은 듯 다른 생각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제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트랜스휴머니즘엔 지금 가장 첨예한 나노기술, 유전공학 기술, 마인드 업로딩 등이 동원된다. 따라서, 책은 그때의 인간을 ‘트랜스휴먼’ 즉 ‘기계가 된 인간(호모 엑스 마키나)’으로 명명한다.

책은 니체(1844∼1900)의 초인 개념을 가져온다. 니체는 인간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고, ‘초인(超人)’이야말로 역사가 추구하는 본래 목표라고 말했다. 개선, 향상, 진보가 전제이자 목표인 트랜스휴머니즘과 닿아 있다는 것. 또,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도 소환된다. 체계적인 과학 방식의 창시자인 그는 ‘새로운 아틀란티스’라는 유토피아 소설을 썼는데, 자연의 법칙을 이해한 과학자가 인류를 위해 그 법칙을 변화시키는 미래를 그린다. “생명을 연장하고 젊음을 일정 수준으로 되찾아라. 노화를 늦춰라. … 신체를 변화시켜라. 뇌를 개선해라….” 소설 속 이 구절은 2009년 발표된 트랜스휴머니즘 선언문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오늘날, 그러니까 ‘살아있는’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등장하면, 이 세계가 좀 더 가까워진다. 책은 이 사상에 입각해 과학 기술을 연구하고, 이를 지원하고, 또 그러한 태도로 사는 모든 이를 ‘트랜스휴머니스트’ 범주에 넣는다. 가까운 예가 일론 머스크다. 괴짜에 공상가이자, 억만장자인(사실 대부분의 트랜스휴머니스트가 이 셋 중 최소한 2개에 해당한다) 그는 인공지능(AI)을 개발하고, 뇌와 컴퓨터 간 인터페이스인 ‘뉴럴 링크’를 연구하고, 화성으로 이주하는 우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사실 그의 행보 자체가 트랜스휴머니즘의 핵심 주제다. 책은 머스크가 기업의 구체적 정책으로 이를 실현시켜 더 독보적이라고 말한다. 레이 커즈와일 구글 엔지니어링 이사 역시 이 방면의 선구자다. ‘특이점이 온다’에서 그는 생물학적 지능과 기술적 지능이 융합된 ‘초지능’의 시대를 예견했다. 또, 그는 일찍 세상을 뜬 아버지의 ‘아바타’를 만들기 위해 아버지와 관련한 모든 자료를 모으고 있다. 수명 연장에서 나아가 ‘불멸’을 꿈꾸는 것. ‘급진’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전형이다.

책은 기고와 대담이 교차한다. 두 저자가 현재의 과학 기술 혹은 합의된 가치를 먼저 소개한 후, 여기서 촉발된 문제의식이나 사회·윤리적 논란을 토론하는 식이다. 예컨대 저자들은 전신 혹은 뇌 신경 냉동 보존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 회사의 냉동 탱크에 이미 200여 명이 ‘부활’을 꿈꾸며 누워 있고, 대기자만 1000명 이라는 사실을 전한다. 이어 성공적 부활을 위해 죽음을 어디서 맞는 게 가장 좋은지 ‘실질적’ 조언까지 주지만, 동시에 인체 냉동 기술엔 회의적 입장을 밝힌다. 또, 인간이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다 보면, 자연히 수명 연장으로 이어진다면서도, ‘급진적 수명 연장’ 개념은 기업들의 마케팅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트랜스휴머니스트를 자처하는 저자들이기에 이런 태도가 모순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맹목적, 유토피아적 트랜스휴머니즘을 지양하는 것일 뿐, ‘해결책을 찾겠다’는 과학자, 기술자들의 태도를 일관되게 칭송하고, 또 지향한다.

‘냉동 인간’이나 인간의 뇌 정보를 전송하는 ‘마인드 업로딩’ 기술이 멀게 느껴진다면, ‘DNA 튜닝’을 떠올려 보자. 중국에선 이미 유전자 변형을 통해 에이즈 면역을 보유한 쌍둥이가 태어났고, 품종 개량된 ‘미니 돼지’가 반려동물로 인기다. 불안함, 혹은 불쾌함이 생기기도 한다. 이때 저자들은 태아의 장애를 판별해 출산 가부를 결정하는 산전 진단을 꼬집는다. 무엇이 다른가. 책은 이러한 기술과 적용 사례가 앞으로 더 많이 쌓일 거라고, 터부시한 얘기들을 더 드러내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기존 상식을 토대로, 기술의 변화를 막을 것이 아니라, 기술 변화 속도에 맞춰, 상식의 제고, 패러다임의 재구성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너무 과격한가. 이미 기술이 그런 상태를 넘었다.

저자들은 최소한의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쓴다. 곳곳에서 던지는 철학적, 근본적 질문에서 더욱 뚜렷하다. 기술의 발달과 인간의 욕망이 계속 성장하면, 언젠가 120세를 넘어 200세, 500세까지도 살게 된다면서도, 책은 ‘1000년을 사는 게 과연 바람직한가’라고 묻고, 유전 공학의 최우선 순위는 ‘맞춤 아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질병 치료에 있다는 걸 명확히 한다. 또, 가장 먼저 트랜스휴머니즘의 성공이 될 AI 분야에 대해선, 딥러닝의 대상이란 “모두가 이득을 볼 수 있어야 의의가 있다”는 기준을 제시한다. 현실을 오롯이 보여주는 저자들의 글과, 야기되는 문제와 개인적 의견을 가감 없이 펼치는 대담을 번갈아 읽다 보면, 과연 ‘호모 엑스 마키나’가 ‘진화의 확장’인지 ‘인류의 종말’인지 다소 애매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래서 더 명백해진다. 지금이야말로, 그 얘기를 할 때라는 것. 커즈와일이 예견한 ‘특이점’의 시대가 불과 20여 년밖에 남지 않았다. 미래는 과연 어떤 그림일까. 저자들은 이 부분도 모호하다. “미래학이란 사이비 과학”이라고 비판하며 “예측은 어렵고, 미래에 대한 예측은 더 그렇다”는 100년 전 어느 희극 배우의 말로 대신했을 뿐이다. 440쪽, 2만4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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