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웹툰과 <극한직업> 감독이 만났는데 재미없는 게 가능해?…'닭강정'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3. 2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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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저격] (글 : 홍수정 영화평론가)


<극한직업>(2019), <멜로가 체질>(2019)을 연출한 이병헌 감독이 돌아왔다. 게다가 이병헌 스스로 재미를 보장했던 작품이다. 그러니 얼마나 재미날지 기대가 컸다. 넷플릭스에서 최근 공개된 <닭강정> 이야기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닭강정>에 대한 반응이 좋지만은 않다. 호불호가 나뉜다. 실은 혹평이 더 많다. 까칠한 반응의 대부분은 이 작품이 이병헌식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지 못한다고 평가한다. 틀린 말도 아닌 것이 <닭강정>에는 이병헌 특유의 엉뚱하면서 귀여운, 말의 티키타카가 별로 없다. 있다 해도 적중률이 낮다. 원작 웹툰 <닭강정>도 특유의 B급 감성을 자랑하며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라 안타까움이 더 크다. 재밌는 원작과 재밌는 감독의 만남. 그런데 결과는 어째서 생각과 다른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전, 먼저 원작 웹툰이 어떤 작품인지 살펴보면 좋겠다. 웹툰 <닭강정>은 나름의 매력이 또렷한 작품이다. "대체 어떤 작품인지 모르겠으나 재밌다"는 평이 넘쳐난다. 이 웹툰의 개그는 B급 감성이고, 처음 보면 약간 썰렁하다. '이게 개그가 맞나?' 싶은 순간도 있다. 그런데 마치 평양냉면 같은 그 심심하고 묘한 맛이 중독적이다. 너무 웃겨서 배를 잡고 뒹굴지는 않지만 자꾸 실실 웃게 된다. 또 개그는 빈 듯하지만, 작품의 서사는 풍성하기 때문에 개그와 스토리의 조합이 좋다.

썰렁한 유머에도 불구하고 <닭강정>은 팬층이 돈독했고 인기가 많았다. 1화에서부터 뚜렷한 색을 보여주며 코드에 맞는 독자층을 쓸어 모았다. 취향이 맞는 사람들은 충성 독자가 되었고, 맞지 않는 이들은 1화에서부터 탈락됐다. 그래서 큰 문제없이 사랑을 받았다. 작품을 전달하는 매체의 성격도 중요하다. '웹툰'의 특성상 개그가 썰렁해도 어색함이 덜하다. 반면 영상 콘텐츠의 개그가 썰렁하면, 취향에 맞지 않는 관객이 느끼는 어색함은 배가 된다. 소리·영상과 함께 입체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썰렁한 개그를 카톡으로 읽으면 덜 민망하지만, 누군가 내 얼굴 앞에서 직접 재현하면 재앙처럼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그러니까 확실한 색채, 충성 독자, 썰렁 개그에 유리한 웹툰이라는 매체의 특성이 잘 어우러지며, 웹툰 <닭강정>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다.


이런 웹툰을 감독 이병헌이 영상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병헌은 누구인가. 그의 감성은 병맛, B급 코드를 표방하는 웹툰 <닭강정>과 좀 다르다. 그의 코미디는 훨씬 대중적이다. 자기 스스로 B급이라고 인식할 수는 있다. 하지만 대중적인 범주 안에서 B급에 가까울 뿐, 이병헌의 코미디는 여러 관객층에 두루 먹혀들어 간다. <극한직업>의 전 국민적인 인기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병헌식 개그는 속도감이 좋다. 대사가 마치 탁구공처럼 인물 사이를 경쾌하게 오간다. 그리고 통통 튄다. 흔히 예상되는 대화의 클리셰를 깬다. 맥락이나 분위기를 살짝 깨트리며 약 올리듯 개그를 던진다. 그래서 이병헌의 개그는 약간 비현실적이지만(현실에서 저런 말을 쓰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지만) 웃기고 귀엽다.

그런 그가 웹툰 <닭강정>과 만난 것이다. 아마도 이병헌은 자기 색깔과 웹툰을 조합하는 방법을 고민했을 것이다. 그의 선택은 <닭강정>의 서사와 주요 개그 코드를 가져가며, 그 위에 자신의 색깔을 덧입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판단이 아니었다. 시리즈물 <닭강정>은 이병헌의 장점도, 웹툰의 장점도 살라지 못한 지루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웹툰의 썰렁한 개그 사이사이에 이병헌 표 개그가 비집고 들어갔다. 그런데 이 둘의 성격은 태생적으로 다르다. 웹툰 <닭강정>은 한 박자 느리고 심심한데, 이병헌 표 코미디는 스피디하고 감각적이다. 속도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다. 둘의 속성은 물과 기름처럼 다르다.

그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 시작 부분이다. 고백중(안재홍)이 자작곡을 흥얼거리며 지나가자, 지나가던 여고생이 그런 그를 보며 놀란다. 원작에서는 고백중이 자작곡을 부르며 지나가는 것이 전부다. 그 노래는 재밌지도, 재미없지도 않아서 '뭐지?' 싶다가 피식하게 된다. 그런데 시리즈물 <닭강정>에서는 노래하는 고백중의 모습을 여고생이 관찰하며 마치 중계하듯 독백을 한다. 이런 중계식 내레이션은 이병헌 표 코미디의 특징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장면이 웹툰 <닭강정>의 B급 감성을 살리지도, 그렇다고 이병헌 특유의 감각을 살라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시리즈물 <닭강정> 안에서 웹툰과 이병헌의 감성은 합일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섞여 있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커플처럼 서로를 방해한다.

이런 점이 관객의 실망을 자아낸다. 이병헌식 코미디를 기대한 관객은 느닷없이 출몰하는 썰렁함에 당황한다. 그리고 이병헌의 개그가 예전과 달리 자꾸만 실패한다고 느낄 것이다. 반대로 원작 웹툰의 감성을 기대하고 본 사람은 이 시리즈가 원작의 감성을 충분히 살려내지 못하고 지나치게 수다스럽다고 느낄 것이다. 어느 쪽의 관객도 잡지 못한 선택인 셈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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