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30년 전 '꿈돌이' 대전엑스포에 北 초청 '단계별 계획' 세웠었다

노민호 기자 2024. 3. 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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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문서 공개] 1~4단계로 구체적 밑그림…'판문점 엑스포 공동개최' 구상도
93년 대전엑스포 캐릭터인 꿈돌이. 2020.12.3/뉴스1 ⓒ News1 김기태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정부가 30여년 전 열린 '1993년 대전세계박람회'(대전 엑스포)에 북한을 초청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단계별 조치'를 세웠던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는 29일 생산된 지 30년이 지나 비밀해제 된 외교문서 2306권(37만여 쪽)을 주요 내용 요약본과 함께 일반에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외교문서엔 노태우 정부 당시인 1991년 1월에 당시 대전세계박람회조직위원회가 작성한 '북한 유치 기본계획'을 통해 '대북 4단계 접근법'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1단계는 당초 예정된 1991년 8월 27일 제4차 남북 고위급회담(남한 콜레라 발생 이유로 그해 10월로 연기)을 계기로 북한에 초청의사를 구두로, 비공식적으로 참여를 요청하는 것이다.

회담 이후엔 구두 초청에 대한 '동력'을 이어가기 위한 계획이 있었다. 민간인, 단체 간의 남북 교류와 유엔 등 국제기구 회의장에서 북한 대표에게 지속적으로 엑스포를 홍보하고 초청 의사를 전하는 것이 그 계획이었다.

국제박람회기구(BIE) 사무국 공한으로 파리 주재 북한 일본대표부에 엑스포 자료를 제공하고 해외유치단 파견 시 제3국을 통한 대리 홍보전 등도 계획으로 상정하고 있다.

이러한 절차가 끝난 뒤엔 2단계로 엑스포 개최 1년을 남겨둔 1992년부터 '공식 초청장 전달'을 통해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겠다는 계획을 확인할 수 있다.

29일 공개된 외교문서 일부.(외교부 제공)

구체적으로 1992년 2~3월 중으로 공식 초청장을 북측에 전달하고 대화 채널 설치도 제의하며, 그해 4월엔 참가 협의를 위한 남북 대표단 구성에 대해서도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관련 계획이 마무리되면 3단계는 '북한 참가를 위한 실무 준비에 돌입한다'는 게 조직위의 구상이었다. 별도 독립관 참여 등 장소 검토를 비롯해 북측 대표단이 대전 엑스포 지역을 시찰할 수 있게 주선한다는 내용도 확인할 수 있다.

1992년 하반기 중엔 주유엔대표부가 있는 뉴욕과 주프랑스대사관이 위치한 파리에서 남북 접촉을 통해 외교적 타협점 모색 노력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끝으로 4단계는 북한 참가 확정에 따른 '후속조치'로 1993년 1~2월 중 참가 계약서 정식 서명과 남북 대표단 회담, 그해 6월엔 북한의 BIE 가입까지 공식 발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엑스포 종료 후에도 북측의 전시물품 폐기 또는 반출 문제도 대면 협의해 남북관계 동력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도 계획에 담겼다. 더 나아가 판문점에서 남북 간 엑스포를 공동개최하고, 1994년 1월 이후에는 남북 정부 당국 간 회담으로까지 이어가겠다는 구상도 세웠다.

조직위의 이러한 구상에 당시 외무부는 "이견이 없다"라며 언론 공개 여부 등에 대해선 "북측과 협의해 결정하겠다"라고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또한 공식 초청장 수신인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외경제위원회 위원장 김달현으로 하라"라고 제언하기도 했다.

1992년 3월 국무총리, BIE 의장 면담록 일부.(외교부 제공)

엑스포 개최를 1년여 앞둔 1992년 3월 당시 정원식 국무총리는 테드 알랜 BIE 의장을 만나 "지난달 평양에 가서 북한과 남북총리 회담을 가졌을 때 북한의 대전박람회 참가도 제의했다"라며 "우리의 제안에 대한 북측의 반응을 아직 공식적으로 들은 바 없지만 북한의 참가를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알랜 BIE 의장도 "어려운 문제지만 BIE로서는 평양에 대전박람회 참가를 권유하고 초청서한도 보내고자 한다"라고 BIE 차원에서도 노력할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일련의 구상은 1단계까지만 진행됐다. 액스포 개최를 1년 정도 앞두고 미국에 의해 제기된 북한의 핵개발 문제, 그해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등으로 남북관계는 물론 한반도 정세가 급격히 경색됐기 때문이다.

다만 정권이 바뀐 뒤에도 정부는 북한의 대전엑스포 참가에 대한 '희망'을 버리진 않았다. 1993년 5월 김영삼 대통령은 BIE 의장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북한의 대전엑스포 참여를 기대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의 대전엑스포 참가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외교문서 공개목록과 외교사료 해제집 책자는 주요 연구기관 및 도서관 등에 배포되며, 외교사료관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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