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볼래]SF 소설 '삼체'에 마오의 문화대혁명이 등장하는 이유

CBS노컷뉴스 김민수 기자 2024. 3. 2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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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우주를 향한 '중국몽'…역사의 거울을 보라
넷플릭스·자음과모음 제공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고 있는 SF 드라마 '삼체'(三體·The Three Body)에 대한 호평이 높다. 중국에서도 화제를 모으며 작년 텐센트 OTT를 통해 드라마로 만들어져 인기를 모은 바 있다. 두 플랫폼 모두 2·3부 제작 예정이다.

'삼체' 원작은 중국 SF 소설가 류츠신이 2007년 출간한 동명의$ SF 장편소설이다. 원작 소설과 각색된 넷플릭스 드라마와 중국 드라마는 연출에 조금 차이가 있다.

류 작가는 1963년 베이징에서 엔니지어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후일 발전소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했다. 쥘 베른 등 해외 SF 문학에 빠져든 그는 직장 기숙사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1999년 SF 소설 '고래의 노래'로 등단해 중국의 SF 문학상 '은하상'을 수상했다. 2006년까지 8년 연속 이 상을 수상하는 등 중국 SF 문학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그의 화제작이 '삼체'다. 중국에서만 300만 부 이상이 팔리고 해외에서는 900만부 이상이 팔릴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2015년 아시아 국적 작가로는 최초로 SF 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SF 문학상 휴고 최우수 장편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는 2013년 1부 출간 이후 2019년까지 총 3부작이 차례로 국내 출간되며 SF 마니아들 사이에서 주목을 끌었다. 넷플릭스가 2020년 '삼체'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을 발표하면서 출판사 자음과모음에서 양장본으로 재출간됐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시절인 2016년 겨울 휴가지에서 읽은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받았고,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삼체를 읽을 때 작품 스케일이 워낙 커서 백악관의 일상사가 사소하게 느껴졌다"는 평가를 남겼다.

최근 넷플릭스 방영이 시작되자 중국 네티즌들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일어난 '문화대혁명'이 극 초반 펼쳐지며 인상적인 시작을 남겼기 때문이다.

중국 문화대혁명. 연합뉴스
중국 텐센트가 제작한 드라마 '삼체'. 텐센트 비디오 갈무리


문화대혁명은 당시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자였던 마오쩌둥(모택동)이 주도했던 대약진운동이 실패하자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내세운 사회주의운동으로 유교문화를 비롯한 전근대적인 문화와 자본주의를 타파하고 사회주의 실천을 내건 운동이다. 공산당 내부의 권력투쟁이자 정치투쟁의 산물임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 사건은 홍위병을 앞세워 지식인과 부르주아 이념을 배격하고 문화유산과 기초 학문을 파괴한 초유의 20세기판 분서갱유로 꼽힌다.

'삼체'의 주요 인물인 예원제는 물리학자인 아버지가 홍위병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어머니에게도 버림받자 체제와 인류에 대한 경멸, 회의감에 사로잡힌다. 불온한 인물로 내몰렸지만 대학에서 천체물리학을 전공하고 아버지의 수제자였던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외계 문명 탐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비밀 구역 홍안 기지에 들어가게 된다. 그의 계산대로 외계와의 대화가 성공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는 복수를 꿈꾸고 지구를 정복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류츠신은 2019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소설 도입부를 이 장면으로 시작하려고 했는데 검열을 우려한 출판사측의 만류로 이 묘사는 중간에 묻히게 됐다"고 밝혔다. '삼체'의 영문판 소설은 넷플릭스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이 장면으로 시작된다. 한국어판은 중국 중경출판사의 원작을 따랐다.

40여년이 흐른 2007년 나노 연구자 왕먀오는 주변의 유능한 과학자들이 갑자기 실종되거나 죽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자 이를 추적해가고 가늠할 수 없는 외계 생명체 때문임을 알게 된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스창도 과학자들에게 일어나는 의문의 사건들에서 실마리를 찾아 나선다.

삼체인이라는 외계인들은 소립자 크기의 인공지능 '지자'를 지구에 송출해 인류의 과학과 문명활동을 감시한다. 이들의 목적은 지구를 공격할 대규모 함대가 도착할 때까지 인류가 시도하는 모든 과학기술을 제거하는 일이다. 특히 기초과학자들을 무력화해 지구의 문명이 더이상 발전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 과학자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이유다.

전 인류를 공멸시킬 가공할 기술과 힘을 보유한 삼체인이지만 자신들의 행성으로부터 지구까지 닿는데 수 백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사이 지구인들이 자신들을 방어하거나 공격할 기술 진화를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와 감시를 하려는 것이다.

이를 눈치챈 인류는 '지자'로부터 유일하게 벗어나 내면의 사유를 통제 할 수 있는 뛰어난 4명의 인간 '면벽자'를 내세워 들키지 않는 '전략'을 세우고자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구와 인류를 위기에 빠뜨리는 것은 인간 자신이다. 그리고 내부의 문제와 갈등하는 인간들을 경멸하며 외부의 힘을 빌어 인류를 벌하려는 것도 인간 자신이다.

소설 '삼체'는 2부와 3부로 이어지며 먼 미래, 본격 우주 시대를 배경으로 닥쳐올 외계의 위협을 마주하고 안간힘을 쓰는 지구인과 인류 문명, 광활한 우주와 은하로 이야기는 거침 없이 뻗어간다.

지구와 우주, 외계를 바탕으로 한 SF 장르라는 점에서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양식을 곳곳에 배치해 시종일관 땀을 쥐게 하고 다양한 과학기술 지식이 담겨 읽는 이로 하여금 흥미를 자극한다.

문화대혁명처럼('텐안먼 사태'까지는 아니지만) 일부 정치적 민감성을 가진 소재가 포함됐음에도 중국 대중들에게 SF 문학이 대대적인 환영을 받은 것은 2010년대 시진핑 시대를 맞아 중화 부흥 정책인 '중국몽'이 본격화된 시기와도 맞물린다.

중국공산당 100주년 해인 2021년 중국 유인우주선 선저우(神舟) 12호 발사장소인 간쑤성 주취안(酒泉) 위성발사센터 부근 도로에 설치된 '중국몽' 표지판. 연합뉴스


중국몽은 국가주석에 오른 시진핑이 향후 100년을 시한으로 중국 굴기를 천명한 중화 부흥 청사진이다. 제1단계로 2021년까지 전 인민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샤오캉(小康) 사회'를 건설하고, 제2단계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에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룬 현대적 사회주의를 완성함으로써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유일 패권국(G1)으로 등극한다는 것이다.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중국 제조 2025(Made in China 2025)'와 '일대일로(신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중국몽 실현의 두 축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과학 굴기, 우주 굴기도 포함된다. 21세기 국제 사회의 영향력있는 패권 국가로, 국제적 위상을 가진 국가로 세계 중심에 우뚝 서겠다는 포부가 깔려 있다. 그러나 미국의 압박이 만만치 않다.

SF 작가이자 중국 시안교통대학교 시아 지아 교수는 '삼체' 영어판 출간 당시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20세기 전환기를 언급하며 "중국 SF 소설은 어떤 면에서 청나라 말기 처음 등장한 이래 '중국몽'의 무게를 짊어지고 왔다"며"그 '꿈'은 전통적 가치관을 보존하면서 서구 국가들을 제치고 매우 강력한 현대 중국이 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류츠신이 2000년 출간한 '유랑지구(떠도는 지구)'도 '삼체'의 성공을 바탕으로 우주 이야기를 펼쳐내는 대표적 SF 소설이다. 적색거성이 된 태양으로 지구와 인류 생존이 위협받자 중국인 우주비행사 부자(父子)가 35억 지구인을 다른 은하계로 이주시키는 스토리다.

이 소설도 2019년 중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져 흥행한데 이어 지난해 원작의 앞 이야기를 다룬 스핀오프 영화 '유랑지구2'가 개봉했다.

이 소설에는 "이 계획은 백 세대에 걸쳐 지속될 거야"라는 상징적인 대사가 나온다. 중국의 과학자들이 대대손손 까마득하고 먼 미래에까지 연구와 탐사를 이어갈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중국은 중국몽과 굴기를 앞세워 과학 기술 보급과 문화 콘텐츠 발전을 뒷받침하는 각종 문화 콘텐츠에 정책 펀드 지원에 나서고 있다. 기초과학 연구 분야에서는 미국에 이어 전 세계 2위의 연구개발(R&D) 투자 국가다. 연구개발에만 많게는 400조원 넘게 지출한다. 한국 산업의 핵심인 반도체와 우주공학은 물론 인공지능, 양자, 바이오, 심해, 극지 등 다양하다.

중국이 미국을 위협하는 기술 국가로 발돋움하려는 계획을 세우기까지 자신들 스스로 기초과학을 무너뜨린 문화대혁명으로부터 무려 반세기가 걸렸다. 인정하려 않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역사를 거울 삼아야 했다. 

반면 한국은 연구·개발(R&D) 예산을 작년보다 4조6000억원(14.7%) 삭감하면서 기초과학 연구계와 관련 산업계는 '멘붕'에 빠졌다. 오는 5월 우주항공청이 출범한다고 하지만 머지않아 중국이나 일부 선진국보다 앞선 기술이 따라잡히거나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학은 인류의 문명이고 인문학의 바탕 위에서 성장했다. 올해 출판콘텐츠 제작지원과 중소출판사 창작지원, 지역서점 문화활동, 도서관 등에 대한 정부 예산이 전액 삭감돼 출판계의 거센 반발을 샀다.

최근 우리 문학계에서도 정보라의 '저주토끼' 같은 SF 소설이 국내외에서 큰 사랑을 받고 해외 문학상까지 수상하며 거침 없는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 국내 문학을 해외 소개하기 위해 번역지원을 하는 한국문학번역원 역시 예산이 전년대비 20%(사업비 기준)나 삭감됐다. 

'삼체'는 우리의 문명을 거꾸로 돌리는 것은 외부의 힘보다 인간 자신에게 있음을 경고한다. 그리고 소설의 결론부는 '먼 옛날 지구에 있었던 이야기'로 그렇게 끝난다. 우리는 지금 시공(時空)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빨간불이 깜빡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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