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돈 훔쳐놓고 뻔뻔"…'코인계 버핏' 괴짜에 25년형 선고

장서우 2024. 3. 29.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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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연방법원, 110억달러 압류 명령도
"반성 전혀 없고, 재범 가능성 크다 판단"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사진=REUTERS

2022년 11월 파산한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32·사진 왼쪽)가 징역 25년형에 처했다. 화이트칼라(사무직) 범죄로서는 미국 역사상 최고 수준의 형량이라는 평가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뉴욕 맨해튼연방법원의 루이스 A 카플란 판사는 28일(현지시간) 피고인 뱅크먼-프리드에 징역 25년 형을 선고했다. 이와 함께 미 정부에 뱅크먼-프리드의 재산 110억달러(약 14조8000억원)가량을 압류, FTX 파산에 따른 피해 보상에 활용하라고 명령했다.

카플란 판사는 “피고인의 뻔뻔한 태도와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고려할 때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며 “그가 미래에 매우 나쁜 일을 할 위치에 놓일 수 있다는 위험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뱅크먼-프리드가 “자신의 행동이 범죄라는 걸 알았고, 나쁜 선택을 했지만,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뱅크먼-프리드가 증언 도중 여러 차례 거짓말했으며, 증인도 매수하려 시도했다고 밝혔다.

사진=REUTERS

이날 황갈색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 등장한 뱅크먼-프리드는 선고 직전 약 20분간의 발언에서 “나는 일련의 나쁜 결정을 내렸고, FTX 파산의 책임은 내게 있다”면서도 “FTX는 단지 유동성 위기를 겪었을 뿐이며, 모든 고객에게 현재 가격 기준으로 (피해액을) 전액 상환할 수 있는 충분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내린 결정들로 인한 실질적인 피해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2년 전 암호화폐 시장 침체로 FTX가 되려 희생당했다는 게 그의 논리다.

그러나 카플란 판사는 이런 주장에 대해 “논리적으로 결함이 있으며, 추측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FTX 고객들과 투자자들, 대출 기관들이 각각 80억달러(약 11조원), 17억달러(약 3조원),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씩의 손해를 본 것으로 계산된다고 반박했다.

뱅크먼-프리드는 사기, 돈세탁, 불법 선거자금 공여 등 7개 혐의로 2022년 11월 기소됐다. 2019년부터 FTX 파산 때까지 고객 자금 수십억 달러를 빼돌려 FTX 계열사인 알라메다리서치의 부채를 갚고 바하마의 호화 부동산을 사들였다는 것이다. 주요 정당 소속 정치인들에게 수백만달러를 뿌린 혐의도 적용됐다. 뉴욕 남부연방지방검찰청은 40~50년을 구형했고,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은 작년 11월 그에게 유죄 평결을 내렸다.

사진=게티이미지

공소를 제기한 데미안 윌리엄스 검사는 뱅크먼-프리드를 향해 “80억달러가 넘는 고객 자금을 훔친, 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금융 사기를 저지르면서도 사법 시스템에 무례를 범했다”고 지적하면서 “피고인의 재범을 막기 위한 이번 선고는 금융 범죄 유혹에 노출돼 있는 이들에게 중요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방 검사 중 한 명인 니콜라스 루스는 “(FTX 파산은) 단순한 유동성 위기가 아니라 수십억달러 규모의 도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뱅크먼-프리드의 변호사들은 형량이 6년 반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크 무카세이 변호사는 뱅크먼-프리드를 “이상한 수학 괴짜지만, 악의는 없는 사람”으로 묘사하면서 “그는 무자비한 금융 연쇄 살인범이 아니다. 스위스 은행 계좌에 수십억달러를 넣어 두고 도망친 적도 없다”고 호소했다. 그가 자폐증을 앓고 있는 데다 자선사업을 해왔다는 점도 선처의 이유로 제시했다. 카플란 판사는 이런 병력을 고려해 뱅크먼-프리드를 샌프란시스코만에 위치한 자택 근처 교도소로 배치하라고 권고했다.

변호인단은 이번 선고에 항소할 방침이다. 뱅크먼-프리드의 가족들은 성명에서 “우리는 상심했지만, 아들을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자료=월스트리트저널

뱅크먼-프리드의 형량은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사기)를 저질렀던 버나드 메이도프, 앨런 스탠포드를 제외하면 미 화이트칼라 범죄 역사상 최장기간이다. 메이도프와 스탠포드는 각각 150년형, 110년형을 선고받았다. 메이도프는 12년 복역 후 82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스탠포드는 여전히 형을 살고 있다.

버나드 에버스 전 월드컴 CEO의 형량이 25년으로 뱅크먼-프리드와 맞먹는 수준이다. 이밖에 제프리 스킬링 전 엔론 최고경영자(CEO·24년형), 존 리가스 아델피아커뮤니케이션즈 창업자(12년형), 산제이 쿠마르 컴퓨터어소시에이츠 전 회장(12년형), 엘리자베스 홈스 테라노스 창업자(11년형), 라지 라자라트남 갈레온그룹 창업자(11년형), 데니스 코즐로브스키 전 타이코 회장(8~25년형) 등이 있다.

한때 세계 3대 암호화폐 거래소였던 FTX의 파산은 전 세계 암호화폐 업계에서 최대 규모의 참사로 불렸다. ‘코인계의 워런 버핏’ 등의 별명이 붙었던 뱅크먼-프리드는 전용기로 전 세계를 횡단하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등 국가 정상들과 대면했다. 그러나 FTX가 위험 투자 전문 계열사 알라메다리서치 간 자금 거래 내역이 세간에 드러나고, 세계 1위 거래소 바이낸스가 인수 검토를 철회하면서 파산에 이르렀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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