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병에게 빅뱅은 우스갯소리…“우주는 영원회귀의 생명” [책&생각]

철학자가 본 우주의 역사
윤구병 지음 l 보리 l 1만3000원
‘철학자가 본 우주의 역사’는 변산공동체학교를 꾸려 농사와 공부를 함께한 철학자 윤구병(81, 전 충북대 교수)의 형이상학적 우주론이 담긴 저작이다. 전작 ‘꿈꾸는 형이상학’에서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모든 것을 원자나 분자 같은 물질 단위로 환원하려는 근현대 과학의 관점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근대과학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온갖 가설들을 아낌없이 버리고, 처음부터 ‘땅과 불과 물과 바람’(지수화풍)의 역사를 다시 쓰려고 한다. 살아 움직이는 크나크신 님에게 옛 영광을 돌려드리고 싶다.” 이 책은 전작에서 한 다짐을 실행하는 작업이다. 순우리말을 살린 압축적인 언어로 ‘우주의 역사’를 지은이의 고유한 형이상학적 시야에서 다시 쓴다.
이 책은 현대 물리학의 표준 우주론 모형으로 자리 잡은 ‘빅뱅 이론’을 부정하는 데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무한히 작은 점으로 응축돼 있던 우주가 그 무한한 힘을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어느 천문학적 찰나에 ‘펑’ 하고 폭발해서 이 우주가 생겨났다고?” 지은이는 이런 이론을 ‘우스갯소리’로 치부한다. 근거 없는 가설일 뿐이라는 얘기다. 지은이는 빅뱅이라는 물리학자들의 ‘믿음’에 ‘영원회귀’라는 자신의 ‘믿음’을 맞세운다. “우주의 역사는 ‘없는 것’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태초가 없다. 무한하다. 끝없이 흐르고 또 흐르면서 그 안에 모든 것을 감싸 안는다. 빈 듯이 차 있고 찬 듯이 비어 있는 이 역사는 수사학적으로 영원회귀의 역사다.”
지은이는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가장 큰 것까지 우주의 모든 것을 아울러 사유하는 것을 형이상학이라고 부르면서, 우주에 대한 형이상학적 이해를 대표하는 것으로 ‘가득 참’의 관점(파르메니데스)과 ‘텅 빔’의 관점(불교)을 제시한다. ‘가득 참’이란 우주가 ‘있는 것’으로 꽉 차 있음을 뜻하며, 그렇게 꽉 차 있음을 부르는 다른 말이 ‘하나’(1)다. ‘텅 빔’이란 ‘아무것도 없음’을 뜻하며, 간략히 말하면 ‘빔’(0)이다. ‘하나’와 ‘빔’은 우주를 설명하는 두 극단이다. 이 우주는 ‘하나 곧 있음’과 ‘빔 곧 없음’이 갈마들어 스스로 형성해가는 전체다. ‘있음’과 ‘없음’이 위태로운 균형을 이룰 때 이 결절점에서 물질현상이나 생명현상이 나타난다.
지은이는 물질과 생명의 중간단계로 여겨지는 바이러스의 활동을 사례로 들어 물질현상과 생명현상이 연속돼 있다고 말한다. “나는 겉보기에 물질현상과 생명현상은 두드러지게 다른 것으로 여겨지고 그렇게 다루어지지만, 저마다 다른 꼴을 지닌 ‘동일한’ 현상의 다른 이름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생명현상은 물질현상의 특수한 양상일 뿐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그런데 생명체와 생명(삶)은 다르다. “삶의 크기는 산몸(생명체) 안에 담기지 않는다.” 이 말은 생명체보다 생명이 더 크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우주 전체가 하나의 큰 생명이며 큰 생명 안에서 생명체가 생명체로 드러난다는 얘기다. “만일에 우주에 외연이 있고 그 외연에 한계가 있다면 그 울타리 전체에 삶은 물결치고 있다.” 이 삶(생명)의 물결은 없음(빔)과 있음(하나)의 어울림 속에서 일어난다.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상징 언어로 참빔님(0)과 하나님(1)의 혼례마당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텅 빔의 없음도 ‘님’이고 가득 참의 큰 하나도 ‘님’이다. 같은 ‘님’의 두 모습이다. 이 없음과 있음이 맴돌고 휘돌고 감돌면서 이 우주가 스스로 펼쳐진다.
맺음말에서 지은이는 말한다. “우리는 ‘하나’(1, 있음 바로 그것)와 ‘빔’(0, 없음 바로 그것)에 가까이 다가설수록, 그래서 ‘하나’와 ‘빔’에 맞닿는 것을 느낌으로 받아들일수록 믿음(종교)이 아롬(이해, 깨달음, 인식)에 앞선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하나’에 믿음을 실으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빔’과 ‘없음’에 믿음을 실으면 ‘일체개공’(모든 것이 비었다)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하나이고 비어 있는 이 우주를 품고 지은이는 자신의 삶의 태도를 이렇게 밝힌다. “뜻은 ‘하늘’ 또는 ‘빔’에 맡기고 그 힘이 움직이는 대로 고분고분 고맙게 여기며 따른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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