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발 기상’ 비상근무 땐 아이 데리고 출근해 ‘돌봄방’서 일해요
[아이 낳게 하는 일터]
기상청의 저출산 극복 실험
올 1월 기상청 전 직원을 대상으로 익명의 설문조사가 진행됐다. 돌발 기상 대비를 위한 밤샘 근무, 섬이나 인적 드문 오지(奧地) 순환 근무 등 기상청 업무 특성을 고려해 직원들이 함께 ‘기상청 맞춤 저출산 대책’을 논의하고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아이를 낳고 싶은데, 적어도 직장 생활의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출산을 망설이거나 포기하는 일은 만들지 말자”며 유희동 청장이 올해 첫 간부 회의에서 꺼낸 아이디어였다.
일주일간 기상청 직원 1342명이 임신, 출산, 다자녀 동료 우대 방안과 그 과정에서 발생될 우려에 대해 의견을 모았다. 이미 자녀가 성인이 된 고참급은 양육 과정에서 힘들었던 점을,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직원은 일과 가정의 균형을 찾기 위한 아이디어를, 미혼이거나 아이가 없는 직원들은 역차별 우려 등을 설문에 담아냈다. 이후 두 달간 조율을 거쳐 최근 ‘기상청 일·가정 양립 지원 제도’가 완성돼 이르면 다음 달부터 시행된다.
가장 먼저 손본 것은 근무 형태다. 임신 기간부터 출산 후 만 5세까지 하루 2시간씩 단축 근무를 쓸 수 있다. 어린이집 등·하원을 위해 하루 3시간까지 유연 근무도 가능하다. 만 12세까지 한 달에 한 번은 재택근무를 신청해 집에서 4시간만 일할 수도 있다. 갑자기 아이를 맡기기 어려운 상황이 생기거나, 집중호우·폭설·태풍·지진 등으로 비상근무에 들어가야 할 땐 아이를 데리고 출근해 같이 일할 수 있는 ‘육아 돌봄방’도 마련하기로 했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박보연 주무관은 “남편 직장이 떨어져 있어 서로 등·하원을 각자 맡아도 시간이 부족했는데 유연 근무가 3시간으로 늘어나면 여유가 생길 것 같다”고 했다.
도서 지역 근무가 많아 생기는 애로 사항도 손봤다. 특히 난임(難妊) 치료가 가능한 병원은 주로 대도시에 밀집해 있기 때문에 난임인 직원은 병원과 가까운 근무지를 신청하면 옮길 수 있도록 했다. 난임 치료 특별 휴가도 횟수 제한 없이 쓸 수 있다. 기상청은 사내 부부가 110쌍에 달할 정도로 직원끼리 결혼한 경우가 많은데 예보, 데이터 분석, 지진 관측 등 전문 분야가 다양하고 본청과 지방청별로 필요한 인력도 달라서 부부가 서로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는 경우도 많다. 이에 사내 부부는 같은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배려하고, 사내 부부가 아니더라도 자녀가 만 12세가 될 때까진 선호 근무지를 우선 배정하기로 했다.
유희동 청장은 이번 제도를 만들면서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한 기혼 직원이나 출산 생각이 없는 미혼·딩크 직원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제도를 정교하게 설계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유 청장은 “저출산 극복이라는 문제의식은 모두가 공유하고 있지만, 출산과 상관없는 직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는 제도가 오래 유지되기 어렵고 혜택을 누리는 직원들도 눈치 보는 상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기상청은 동료가 육아휴직에 들어가거나 단축 근무를 써 업무 공백이 생겼을 때 그 업무를 대신 한 직원에게 ‘업무 대행 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또 ‘휴직 예고제’를 활성화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붙여 6개월 이상 사용이 예상될 경우 미리 통보만 하면 해당 부서에 결원을 우선 보충해주기로 했다. 한 부서에서 육아휴직자가 많이 나와도 휴직을 쓰는 데 무리가 없도록 하고, 아이를 가진 직원도 동료에 대한 미안함 없이 출산과 육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공공기관 특성상 기업처럼 임신·출산 때 금전적 지원이 어려운 한계는 기상청 상조회가 운영하는 상조회 기금을 이용해 저리 대출이 가능하도록 했다. 다자녀 직원은 최대 2000만원을 2.5% 이자로 빌릴 수 있다. 유 청장은 “이제 겨우 첫발을 뗐고, 직원들의 의견을 주기적으로 들어보면서 제도를 보완해갈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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