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인마, 김포가 다 네 집이냐?”

관리자 2024. 3. 2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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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병 시절, 신고식을 치를 때 고참이 "집이 어디냐"라고 물었다.

직장이나 학교 또는 사적 모임에서 자기를 소개할 때 이름, 나이(학번), 부서(학과)를 말하면 끝이다.

우리는 '집'에서만 살지 않기 때문이다.

집에 있던 것들이 다 밖으로 나가고 밖에 있던 것들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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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병 시절, 신고식을 치를 때 고참이 “집이 어디냐”라고 물었다. 바짝 긴장한 나는 내무반이 떠나가라고 외쳤다. “네, 경기도 김포입니다!”

그랬더니 고참이 내 뺨을 툭 치면서 되묻는 것이었다. “인마, 김포가 다 네 집이냐?” 지내고 보니 선임병이 출신지를 묻는 것은 관례였고, 제대로 답하는 신병은 거의 없었다.

자기소개를 할 때는 어떠한가. 직장이나 학교 또는 사적 모임에서 자기를 소개할 때 이름, 나이(학번), 부서(학과)를 말하면 끝이다. 신상 정보 공개가 길어지면 민폐다.

나는 신병이 자신의 거주지를 도시나 군 단위로 이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집’에서만 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을과 이웃 마을들, 즉 생활권에서 산다.

문제는 자기에 대한 인식의 크기가 작아졌다는 것이다. ‘나는 혼자’라는 자의식이 갈수록 강해진다. 가족 구성원이 줄어들고 집 밖 사회는 오직 ‘경제 논리’로 돌아가기 때문이리라.

급격한 산업화·도시화로 인해 ‘집’에 대한 개념이 달라졌다. 담장은 높아지고 문은 늘 닫혀 있다. 이웃이 사라졌다. 고향은 주소지로만 존재한다. 예전의 풍광과 인심이 오간 데 없다.

집에 있던 것들이 다 밖으로 나가고 밖에 있던 것들이 들어왔다. 출산과 잔치가 밖으로 나가고 우물과 화장실이 들어왔다. 가족보다 가전제품이, 어린아이보다 반려동물이 더 많아졌다.

공광규 시인의 시가 부럽다. 그렇다. 담장을 허물면 다 ‘들어온다.’ 시가 우리에게 이렇게 권하는 것 같다. ‘그대들 마음의 집을 에워싸고 있는 담장을 허물어보시라, 그리고 무엇이 들어오는지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보시라’라고.

이문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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