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방어막도 없다… 쏟아지는 ‘中 헐값직구’에 中企 “공장 다 문닫을 판”

최연진 기자 2024. 3. 29.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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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테무·쉬인 저가제품 공습
국내 제조업계 80% “매출 영향”
“규제하기 전에 공장 문닫을 판”
지난해 말 인천시 중구 인천본부세관 특송물류센터에서 세관 직원들이 해외에서 도착한 직구 물품들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최근 우리나라에는 중국발 직구가 늘고 있다. 금액 규모만 지난해 23억5900만달러로 전년보다 약 58% 증가했다. /뉴스1

국내의 한 영유아용 완구 제조 업체는 최근 장난감 생산량을 50%까지 줄였다. 지난해부터 알리익스프레스(알리) 등 중국 이커머스를 통해 초저가 직구 제품이 쏟아지면서 판매량이 매달 뚝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직원 수가 60명에 달했는데, 지금은 15명 수준으로 줄였다. 이 회사 대표 A씨는 “겉으로 보면 엇비슷하지만 중국산 제품은 어떤 소재를 썼는지, 안전 인증을 받았는지조차 알 수가 없는데 우리 제품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라 도저히 경쟁이 안 된다”며 “정부가 대책을 마련한다고는 하지만, 규제가 나오기 전에 공장들이 다 무너질 판”이라고 했다.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이 국내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면서 우리 중소기업들이 중국발(發)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수출’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중국은 내수가 침체되자 재고를 헐값에 해외로 수출하는 ‘밀어내기’ 전략을 펼치고 있다. 중국 이커머스는 특히 저가(低價) 전자제품, 의류, 잡화 등을 국내로 쏟아내고 있는데, 경쟁자인 국내 이커머스뿐 아니라 이런 물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들까지 시름하는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11~19일 중국 이커머스 직구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 32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 기업의 80.7%가 “중국 직구로 매출이 감소했거나 감소가 우려된다”고 했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정부가 중국발 디플레이션 수출에 시의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자본력과 판매력이 약한 생활 소비재 생산 기업부터 무너지기 시작해 전체 중소기업이 휘청일 것”이라고 했다.

28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발 직구 금액은 23억5900만달러(약 3조1800억원)로 전년보다 58.5% 증가했다. 물품 건수도 8881만5000건으로 1년 새 70.3% 급증했다. 중소기업계에선 증가분 대부분이 중국 이커머스를 통해 들어온 저가의 가전·생활용품으로, 국내 영세 업체들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물품들이라고 분석한다.

◇”가격으론 절대 상대가 안 된다”

중소기업들은 “우리 제품은 중국 직구 제품에 비해 무조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입을 모았다. 일단, 무역을 통해 들어오는 수입품과 달리 중국에서 국내 소비자에게 바로 배송되는 직구 제품이다 보니 세금이 붙지 않는 경우가 많다. 관세법은 150달러 미만 소액 직구에 관·부가세를 면제해주고 있는데, 소비자들이 중국 이커머스를 통해 직구하는 생활용품 대부분이 이 범위에 든다. 과거에는 중국이 저가 제품을 쏟아내더라도 정부 수출입 정책이나 관세 등을 통해 ‘1차 방어’를 할 수 있었는데, 이커머스를 통한 ‘직구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최소한의 방어막조차 해제된 셈이다.

그래픽=양진경

국내 기업은 KC 인증 등 국내 안전 인증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물품별로 수백~수천만원씩 비용을 쓰는데, 중국 직구 제품은 이런 규정에서도 벗어나 있다. 전동 공구를 판매하는 B업체 대표는 “우리는 안전 인증 비용에 친환경 부담금까지 내야 하지만, 경쟁 중국 업체는 이런 돈을 쓰지 않으니 헐값에 미인증 제품을 팔고 있다”며 “직구라는 틈새를 이용해 엉터리 물건을 유통해도 규제를 받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중국 직구 제품과 경쟁하려면 수익은커녕 손해를 감수하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데 누가 그렇게 장사를 하겠느냐”고 했다. 이 때문에 중국 직구로 초저가 물건을 떼어다가 마진을 약간 붙여서 국내에 되파는 업체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소비자 입장에선 당장은 값싼 물건을 사니 이득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 우리 중소기업이 무너지고 저품질 제품이 시장을 장악할 우려가 커진다는 지적이다.

◇'사후 규제’에 초점 맞춘 정부 대책

정부는 산업계 우려가 커지자 중국 이커머스의 국내 진출에 대처할 전담팀을 구성해 운영하기로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6일 해외 전자상거래 사업자에게도 국내 대리인 지정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한마디로 ‘알리도 국내에 사무실과 대리인을 두고 소비자 보호 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이를 어기면 과태료 부과 등 제재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소기업계는 “정부 대책은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 이후의 ‘사후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국내 중소기업 보호 방안은 통째로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중기중앙회 추문갑 본부장은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디플레이션 수출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도 산업 전반을 지키는 차원에서 플랫폼 규제안 등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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