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초 치지 마라’ 소리를 듣더라도
언론사 입사 후 ‘기사에 초 치지 마라’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조미료 식초가 신맛이 강해 너무 많이 치면 음식 본연의 맛을 해칠뿐더러 먹지도 못하게 되듯이, 기사에도 과장을 섞거나 지나치게 윤색하면 사실이어도 오히려 의심을 받는다는 뜻이었다.
얼마 전, 취재를 나가 협력사(하청) 직원으로 일하다 원청 기업에서 직접 고용으로 전환된 크레인 기사를 만났다. 짧은 인터뷰인데도 많이 긴장해 땀을 뻘뻘 흘려서 질문도 더 조심스럽고 덩달아 긴장했다. ‘직고용 전환’ 발표 때 어땠는지를 묻자, 수줍은 미소와 함께 “로또 당첨이나 마찬가지였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전화로 인터뷰한 다른 크레인 기사는 통화를 마치려다 “한마디만 더 해도 되겠느냐”고 하더니 “협력사 직원으로만 30년을 보냈다. 정직원이 된 건 (인터뷰이 이름) 인생에서 ‘가문의 영광’”이라고 했다. 올해 첫째 자녀를 대학에 보낸 그는 정직원 복지로 학자금을 전액 지원받았는데, 스마트폰 너머로도 감격에 찬 목소리가 그대로 전해졌다.
하나를 질문했는데 열 이상으로 대답이 나오니 ‘오늘 취재는 날 도와주는구나’ 생각했다. 동시에 이 말들을 기사에 옮긴다면 “초 좀 적당히 쳐라”라는 얘기가 들려올 것 같았다. 협력사 직원들까지 함께 다닐 수 있는 대기업의 상생 직장 어린이집 취재 때, 이곳에 아이를 맡기는 협력사 직원이 “꿈도 못 꿨던 일, 주변 대부분 듣도 보도 못했던 복지”라고 말했던 순간도 비슷했다.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서도, 취재 메모를 정리하면서도, 기사를 쓰면서도 왜 그들의 대답을 ‘초 치는 문장’으로 여기게 됐는지 생각했다. 그들의 표현이 극적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그들이 받게 된 복지나 지원이 그만큼 일반적이지 않고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청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기업, 상생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기업, 신사옥에 입이 떡 벌어지게 직원 복지 공간을 만든 기업 등 현장을 다녀보면 감탄하는 순간도 많다. 하나하나 모범 사례인데, 모아 놓으면 꿈에 그릴 이상적인 직장이 만들어질 것 같다. 냉정히 말해 현실에는 없다.
그래서 가장 최근에 다녀온 직장 어린이집에서는 일부러 삐딱한 질문도 던졌다. 초 친 것 같은 대답이 나오면 ‘이걸 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을 피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런 복지나 지원은 결국 대기업이니까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해야 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작년 어린이집 문을 열고 1년 동안 운영을 맡아온 어린이집 원장님이 “예산이 있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초기에는 시행착오도 있었는데 회사가 어린이집에서 요청하는 건 최우선으로 가장 먼저 해결해주면서 전폭적으로 지원해줬다”고 했다.
원장님 눈이 빨갛게 충혈되더니 그가 눈물까지 훔쳤다. ‘이 상황이 기사에서 살아남기 어렵겠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초를 쳤다는 이야기를 듣든 아니든 진심이 느껴져 좋았다. ‘이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은 행복하겠구나’라고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당장 모든 기업이 이런 지원을 할 수 없겠지만, ‘초 치지 마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현장이 한 곳 한 곳 더 늘어났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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