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불안정한 프로그램’ 확대한 금감원, 기업 무더기 공시 오류

김희래 기자 2024. 3. 29.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올해 시스템 오류로 9차례나 업데이트… 기업에 책임 전가 논란
일러스트=박상훈

금융감독원이 제공해 기업들이 공시 자료를 입력하는 문서 편집 프로그램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면서 무더기로 공시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는 기업들의 주장이 나왔다. 금감원은 해당 프로그램의 미비점을 알아채고 올 들어 9차례나 업데이트했다고 한다. 하지만 금감원은 공시 오류의 책임을 되레 기업에 전가하는 모습을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28일 금감원에 따르면 자산 총액 2조원 이상인 기업들은 올해부터 작년 사업 보고서를 공시할 때 XBRL(eXtensible Business Reporting Language)이 적용된 편집기를 사용해 자료를 입력해야 한다. 이 편집기는 금감원이 기업들에 제공한다. 그런데 기업들은 이 편집기에서 각종 버그(시스템의 착오)가 발견되는 등 아직 프로그램이 안정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금융 당국이 이를 성급히 공시 업무에 도입해 올해 무더기 공시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그래픽=박상훈

◇상장 기업 20곳서 무더기 공시 오류

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이 최근 제공한 편집기에선 금액의 자릿수를 구분하는 쉼표(‚)가 마침표(.)로 인식되는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편집기에서 회계장부 특정 항목에 ‘15,000,000’을 입력했어도 이를 조회하는 화면에는 ‘15,000.000′으로 표시되는 식이다. 이 경우 숫자로 따지면, 1500만이 1만5000으로 크게 작아지는 오류가 나타난다.

오류 사례는 더 있다. 회계장부의 서로 다른 계정에 우연히 같은 금액이 입력되면 편집기가 두 계정을 같은 것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이 경우 한쪽 숫자를 고치면 다른 계정에 입력된 숫자도 자동으로 수정된다. 예를 들어, 미수수익과 보증금 계정에 우연히 37억8000만원으로 동일하게 입력된 경우 미수수익 숫자를 고치면 보증금 항목도 함께 수정되는 식이다.

이 외에도 금감원이 미비점을 보완한다며 이 시스템을 업데이트할 경우 기존에 입력해 놓은 값들이 모두 사라져 공시 업무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공시 오류가 발생한 기업은 삼성SDS, 현대모비스, 포스코홀딩스 등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기업들을 비롯해 확인된 곳만 20곳이 넘었다. 한 기업 관계자는 “공시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자들이 매년 같은 업무를 해왔는데 XBRL 편집기 사용이 확대된 올해 유독 공시 오류가 많이 발생했다”며 “금융 당국이 불안정한 프로그램을 성급히 도입한 영향”이라고 주장했다. XBRL이 적용된 편집기 사용은 내년부터 자산 규모 5000억원 이상 기업으로 확대된다.

◇금감원 “오류 책임은 기업” 대 기업들 “프로그램이 미비”

문제는 금감원이 편집기 소프트웨어의 미비를 인정하지 않고 기업들에 “제대로 정정 공시를 하지 않으면 제재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금감원은 최근 공시 오류가 발생한 기업들에 이메일을 보내 “사업 보고서를 적절하게 공시하지 않은 경우 과징금과 임직원 제재를 실시하고 있다” “정정 공시 요청에도 (정정을) 고의로 지연하거나 불응할 경우 추가적인 제재도 가능하다”고 경고했다. 또 “자본시장법상 사업 보고서 제출 기한인 3월 말까지 정정 공시를 모두 완료하라”고 요구했다. 사실상 공시 오류의 책임이 기업에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기업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금감원 홈페이지에는 올해 들어서만 금감원이 XBRL이 적용된 편집기를 9차례 업데이트한 기록이 있다. 금감원도 이 편집기의 미비점을 인지하고 각종 버그를 보완한 것이다. 금감원이 이 편집기를 마지막으로 업데이트한 날짜는 지난 26일이다.

기업 관계자들은 “공시 내용을 입력해 놓더라도, 금감원이 업데이트를 하면 처음부터 숫자를 다시 입력해야 한다”며 “시스템이 불안정해 금감원이 업데이트를 반복하고 있는데, 공시 마감일인 4월 1일이 다가오고 있어 답답한 심정”이라고 했다.

이에 대한 금감원의 입장을 묻고자 기업 공시 업무 책임자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