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도 못파고 멈춘’ 위기의 사업장, LH서 사준다
공사비 급등과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위축, 미분양 누적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건설업계를 돕기 위해 정부가 과거 경제 위기 때 활용한 지원책을 다시 꺼냈다. 민간 건설사 등에 유동성을 지원하고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 핵심이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건설사가 보유한 개발 예정지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3조원을 공급하고, 지방 미분양 아파트를 사들이는 부동산 투자 회사(리츠)엔 중과세 배제 같은 혜택을 주기로 했다. 이 모두 1990년대 말 IMF 외환 위기, 2000년대 말 세계 금융 위기로 국내 건설 경기가 침체에 빠졌을 때 쓴 처방이다.
정부는 28일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을 담은 ‘건설 경기 회복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건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정상적인 기업까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내수(內需)와 고용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우려가 커지자 시장 연착륙을 유도하고자 마련한 대책이다.
◇PF 부실 우려 사업지, LH가 사들인다
정부의 건설업계 지원책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민간이 추진 중인 개발 사업 중 부실 가능성이 큰 토지를 LH가 3조원 규모로 매입하는 것이다. LH는 4월부터 사업장 부지를 팔고 싶어 하는 기업에서 희망 가격을 제출받아 공시 가격 대비 할인 폭이 큰 땅부터 순서대로 매입할 계획이다. 상반기 중 2조원, 7월에 1조원 등 총 3조원을 투입한다.
앞서 정부는 1998년 외환 위기(2조6000억원)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7200억원) 때도 건설 경기 경착륙을 막기 위해 LH를 통해 약 3조3200억원 규모의 땅을 사들였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이전보다 땅값이 많이 올랐지만,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심각했던 두 경제 위기에 버금갈 정도로 최근 건설 경기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LH가 사들일 토지는 시행사가 사업 초기 ‘브리지론’으로 토지 소유권은 확보했지만, 공사비 조달을 위한 추가 대출(본PF)을 거부당해 이자만 내면서 사업 진행이 멈춘 곳이다.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로 땅을 처분하지도 못하고, 유동성 부족으로 고민하는 기업은 LH에 땅을 팔아 대출금을 갚고 운영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또 민간 리츠가 장기 임대주택을 짓기 위해 PF 부실 우려 사업장을 인수하면 브리지론 상환이나 공사비 등 추가 비용을 주택도시기금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지원 대상과 규모는 4~5월 중 정할 예정이다.
◇지방 미분양은 구조조정 리츠가 매입
최근 지방에서 특히 심각한 아파트 미분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10년 만에 ‘기업구조조정(CR)리츠’ 카드를 다시 꺼냈다. CR리츠가 내년 말까지 지방에서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사들이면 취득세 중과세율을 적용받지 않는다. 취득 후 5년간 종합부동산세 계산에서도 제외해 준다. 정부는 앞으로 미분양 상황을 파악해 양도세 면제 등 세제 추가 혜택도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민간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수익성을 높여주기 위해 조합이 공공에 제공하는 임대주택의 인수 가격을 올리는 방안도 추진한다. 현재는 임대주택 인수 가격을 기획재정부에서 정한 ‘표준건축비’로 매기는데, 국토교통부가 정하는 ‘기본형 건축비’의 일정 비율로 높이는 방안이 유력하다. 물가 안정 목적으로 정부가 관리하는 표준건축비는 기본형 건축비의 57% 수준이다.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의 건설 원가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재건축·재개발 조합으로선 임대주택을 지으면 손해였다.
정부는 또 건설 경기 침체로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의 공급까지 차질을 빚는 것을 막기 위해 공공 부문 공사비를 증액하기로 했다. 작년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유찰된 대형 공공 공사만 4조2000억원 규모다. 정부는 공사비 현실화를 통해 상반기 안에 3조원가량의 프로젝트를 정상화한다는 계획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경제 위기 때 활용한 대책을 꺼냈다는 건 건설 경기 회복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시장 상황을 수시로 살피면서 보완 대책도 계속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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