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엉겅퀴의 계절

허행윤 기자 2024. 3. 2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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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엉겅퀴는 해마다 이맘때면 지천이었다. 국화과의 여러해살이 식물로 줄기 전체에 하얀 털이 난다. 꽃 색깔은 보랏빛에 더 가깝다. 민들레의 사촌뻘이다.

줄기 전체에 하얀 털이 수북하다. 사실 털보다는 잔가시 같은 느낌이 대세다. 살에 닿으면 그래서 제법 쓰라렸다.

어릴 적 벗들과 언덕에서 바람개비를 돌리며 달음박질로 내려가다 보면 이 꽃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럴 때마다 무릎에는 도깨비바늘이 수북하게 꽂혀 있었다. 1960년대 아련한 추억이다.

서양에도 이 꽃과 관련해 에피소드가 많다. 그 가운데 단연 으뜸은 스코틀랜드다. 참, 엉겅퀴는 스코틀랜드 국화다. 그러고 보니 남성 근위병들이 짧은 스마트 차림으로 근무하는 까칠까칠한 뉘앙스가 이 나라와도 많이 닮긴 닮았다.

이런 설화도 있다. 중세 스코틀랜드를 침공하던 노르웨이 군대가 밤에 기습하려 다가오다가 이 꽃에 찔려 비명을 내질렀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병사들이 잠에서 깨어 노르웨이군을 격퇴했다고 한다.

국내 연구진이 엉겅퀴에서 위암 종양 성장을 조절하는 천연물질을 찾아냈다. 안전성평가연구소의 발표다. 엉겅퀴에 많이 포함된 ‘펙톨리나리게닌’이라고 불리는 천연물질이 위암 종양의 성장을 억제한다는 내용이다. 이 천연물질은 위암 종양 성장을 지연시켜 종양 무게를 줄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혈액 분석 결과 체내 독성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불현듯 고(故) 기형도 시인의 작품 ‘나리 나리 개나리’가 오버랩된다. 그는 광명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네가 가져간 시간과 버리고 간/시간들의 얽힌 영토 속에서/한뼘의 폭풍도 없이 나는 고요했다/다만 햇덩이 이글거리는 벌판을/맨발로 산보할 때/어김 없이 시간은 솟구치며 떨어져/이슬 턴 풀잎새로 엉겅퀴 바늘을/살라 주었다.” 이번 주말 들녘으로 나가면 엉겅퀴를 만날 수 있을까.

허행윤 기자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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