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

경기일보 2024. 3. 2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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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두영 천주교 수원교구 신부

예전에 안나의 집(성남의 노숙인 무료급식 시설)으로 봉사 다닐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코로나 시기여서 식당 내부에서 배식하지 못하고 성남동 성당 마당에서 도시락을 배부하고 있었다. 한창 도시락을 드리고 있는데 한 노숙인이 김하종 신부님(안나의 집 원장)을 찾는 것이었다. 그래서 왜 그러냐 물으니 고해성사를 하고 싶어서 그런다는 것이다. 한데 하필 김하종 신부님이 출타하신 날이었다. 그래서 부득이 필자가 “사실 저도 신부다(사복을 입고 있었으므로 상대방이 먼저 알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해가 필요하신 거면 저라도 드릴 수 있다. 저라도 괜찮으시면 고해 드리겠다”고 했더니 좋다고 하셨다.

그래서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사실 이분은 천주교 신자도 아니었고 심지어 술기운도 조금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런들 어떠랴. 그분이 털어놓는 마음 깊이 숨겨뒀던 죄스러운 일들, 마음들, 삶의 이야기들을 다 들어 드렸다. 그렇게 다 듣고 나서 “사실 고해성사는 천주교 신자만 가능하다. 하지만 오늘 아버님이 진심으로 뉘우치며 사제를 찾아와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셨으니 이게 성사적 유효성은 없어도 하느님이 그 마음을 굽어보시고 친히 도와주실 거다. 성사가 아니라서 사죄경은 드리지 못하지만 저도 아버님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해드리겠다”며 설명해 드리고 그분이 실천하실 수 있는 작은 보속(고해성사를 하고 난 뒤 사제가 주는 과제로 선행이나 기도 등 죄에 대한 책임을 지게하고 삶을 변화시킬 수 있게 돕는 일종의 처방전 같은 것)을 드린 뒤 그분 머리에 손을 올려 축복해 드렸다. 그러자 그분은 너무나 기뻐하며 자기 같은 사람에게도 따뜻한 밥을 주시는 김하종 신부님께 감사하고 송구해서라도 이제는 정말 새롭게 살려고 노력하겠다며 기뻐하며 도시락을 들고 가셨다.

이때 필자는 ‘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삶 속에 있어 왔던 실수, 후회, 상처들, 그런 자신의 나약함을 고백하고 새로운 기회를 받고 싶은 마음이 있구나’ 깨달았다. 그래서 고해성사를 만드신 예수님을 찬양하며 이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새삼 느낀 적이 있다.

고해성사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혹자들 중에는 감히 인간인 신부가 뭔데 용서를 말하며 ‘인간인 신부에게 뭐하러 죄를 고하나. 그냥 다이렉트로 기도하면 되지’ 한다. 그런 물음에 신학적으로나 영성적으로 얼마든지 하나하나 응해드릴 수도 있지만 그런 물음들이 실은 무지와 두려움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기에 그보다는 그저 ‘고해성사 안에서 신의 자비를 만난 사람들의 얼굴’을 한 번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웃으며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 안에는 자신의 죄와 나약함을 고하고 싶은 마음이 정말 조금도 없나요. 아니라면 저라도 당신의 고해를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고해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고해성사의 은총을 체험해본 사람은 안다. 이것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그 안에서 얼마나 내밀한 신과의 만남이 일어나는지 신부는 정말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안에선 실로 신께서 친히 일하신다는 것을! 인간이 자신의 아집과 교만을 벗어 놓는 그 빈자리에서 놀라운 신의 치유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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