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재의 돌발史전] 괴력난신(怪力亂神)의 시대

유석재 기자 2024. 3. 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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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不語怪力亂神.

자불어괴력난신.

공자는 괴이(怪異)함과 용력(勇力)과 패란(悖亂)의 일과 귀신(鬼神)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論語’ 述而)

사람들이 그다지 수다스럽지 않던 시대의 언어들은 무척이나 간결하면서도 할 말을 다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언론사 은어를 빌려 말하자면 ‘야마’만을 정확히 기록하는 것이지요. 괴력난신(怪力亂神). 괴이한 것과 힘쓰는 것과 어지러운 것과 신기한 것.[’괴력난신’을 괴이, 용력, 패란, 귀신으로 해석한 것은 주자(朱子)입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기삿거리가 될 만한 이 모든 일들에 공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분명 사(史)보다는 철(哲)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괴력난신’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주자 주에서 글자들을 모아보면 ‘상덕치인(常德治人)’이 됩니다. 일상적인 것과 덕스러운 것과 다스려지는 것과 인간적인 것. 스트레이트 사건기사 한 꼭지 쓰기 어려운 애매모호한 일들입니다. 항상 ‘괴력난신’을 찾아 헤매야만 하는 기자의 입장으로선 괴력난신에 초연한 삶이란 참으로 부럽기 짝이 없는 생애로 보입니다. 하긴, 요즘엔 별 특징 없는 ‘괴력난신’들은 인터넷 기사로만 실릴 뿐 지면에는 빠지기 일쑤입니다. 웬만한 괴(怪)들은 상(常)의 범주에서 그다지 멀지 않게 느껴지기조차 합니다.

그런데, 잠시만 생각해 보고 넘어가지요.

만일 그 ‘괴력난신’이 말입니다. 일반인들이 ‘이건 괴력난신이야’라고 느낄 수조차 없이 이미 일상에 아주 깊이 파고들어와 있는 상태라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요? ‘엽기’라는 섬뜩한 어휘가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이 되고, 사기와 협잡이 비즈니스의 테크닉으로 편입하고, 보전녹지고 환경보존이고 아랑곳없이 멀쩡한 산등성이 택지개발 깃발 내건 굴착기로 한번에 밀어붙이는 일이 ‘합법’으로 포장되고, 재산축재 땅투기 병역기피 탈세같은 무시무시한 말들이 사회지도층 인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거쳐야 될 필수코스’로 인식되는 듯한 세상에서 괴력난신 또한 평생 늘 옆에 두고 살아야 할 동반자가 된 것은 아닌가요?

오래 전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한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무척 화가 났습니다. 어느 월요일에 아폴로 눈병으로 알려진 급성출혈성결막염에 걸린 학생 170여명을 모두 다 학교에 나오라는 긴급지시를 내렸다는 겁니다. 고등학교 교사인 저의 한 지인(知人)은 “정말 미쳤나봐”라는 말로 간결하게 감회를 표현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저는 학교에 전화를 걸어 그 교장 선생님과 통화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마치 전화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이 “사실 그게 와전된 겁니다…”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게 말이죠. ‘가짜’가 너무나 많단 말이에요.” 월초부터 갑자기 눈병에 걸려 등교하지 않는 학생들이 늘어나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평일 낮에도 시내에 학생으로 보이는 멀쩡한 아이들이 활보하고 다닌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실태 조사에 들어가 봤는데…”

=친구들끼리 뺨을 비빈다.

=눈꺼풀을 뒤집어 문지른 뒤 다른 애한테 비벼준다.

=눈물을 받아서 다른 애들한테 분양해 준다.

=눈병 걸린 애 학용품을 얼굴에 문지른다.

=담배연기를 눈에 불어준다.

…등등.

이런 사태가 빈번하다는 보고가 들어와 “애들 전부 다 학교 나와보라고 그래!”라는 지시를 내렸고, 학교에서 보건 선생님(옛 양호 선생님)이 다시 점검한 결과 170여명 중 90명은 다시 학교에 나오게 됐다는 겁니다.

약간의 생각이 필요한 얘깁니다. 당시 전국적으로 80 만명의 학생 환자들 중에서 ‘나이롱’이 상당수 있었다는 얘긴데, 그렇다고 무작정 휴업 없이 수업을 진행하는 게 능사인지는 모르겠고, 애당초 시·도 교육청에서 겨울방학 일시를 조절하는 방법으로 일괄적으로 방학 지시를 내렸더라면 그렇게 크게 번지지도 않았을 거라는 얘기들이 많은데 그게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무렵 1일 사이에 환자 수가 15%가 늘었는데, 이건 전국적으로 수만명이 하루 만에 감염됐다는 얘긴데, “50%씩 늘었을 때보다는 환자 수가 줄었다”라고 발표하면서 기세가 한풀 꺾였다고 말하는 게 과연 타당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애들 눈병 환자 100만 명 채우고 나서야 이제 이만하면 환자 더 안 생길 테니 수업 계속 하자는 식으로 말하는 것인지, 도대체 교실에 한데 모아 놓고 수업을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감염을 막는 대책을 세웠다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학교 나오기 싫어서 일부러 눈병에 걸리려고 하거나, 최소한 눈이 충혈돼 보이도록 하려는 일이야말로, 참으로.

‘괴력난신(怪力亂神)의 일상화(日常化)’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일부러 제 몸속에 병을 들이는 것이니 괴(愧)요, 그것을 억지로 옮기는 것이니 역(力)이요,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니 난(亂)이요, 도무지 어처구니없고 기상천외한 일이니 신(神)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왜 우리 아이들의 학교는, 차라리 눈병에 걸릴지언정 등교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곳이 되었을까요. 어째서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이제는 아이들에게까지 번지고 있는 것일까요. 다산(茶山)은 이미 오래 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옛날의 학교를 말하면 거기에서 예(禮)를 익히고 악(樂)을 익혔는데, 지금은 예가 무너지고 악이 깨져서 학교의 가르침은 글을 읽는 일 뿐만 남고 말았다.(牧民心書)” 200년이 지난 지금, 이제 눈조차 보이지 않으니 무슨 글이나 읽을 수 있겠습니까? 참고로, 그 경기도발(發) 기사는 인터넷에조차 오르지 않았습니다.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 줄기 역사의 단면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아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매주 금요일 새벽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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