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향으로 결정했습니다[공간의 재발견/정성갑]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2024. 3. 28.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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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동거인과 동네 카페에 갔다가 놀란 일이 있었다.

운이 좋아 창가 자리에 앉게 됐고 주문한 커피와 요거트, 프렌치토스트가 나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는데 하, 사진이 예술로 나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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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동거인과 동네 카페에 갔다가 놀란 일이 있었다. 운이 좋아 창가 자리에 앉게 됐고 주문한 커피와 요거트, 프렌치토스트가 나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는데 하, 사진이 예술로 나오는 거다. 오랜 갈증이 풀리는, 해방과도 같은 기쁨을 느끼며 공간과 빛에 관해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빛 하나로 호들갑을 떤 건 우리 집이 거실을 기준으로 북향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사진을 많이 찍고, 또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 북향은 영 흥이 안 나는 자리다. 일조량이 많지 않아 사진에 생기가 훅 떨어진다. 주말이면 김밥 마는 것이 취미인데 이리저리 접시를 옮겨가며 아무리 열심을 떨어도 김밥이 맛있게 보이지 않는다. 아, 넉넉하고 쨍한 빛이 없다는 것을 인식했을 때의 서운함과 아쉬움이란. 확 타오르지 못하고 휘리릭 꺼져 버리는 촛불을 볼 때처럼 기쁨이 빠르게 사그라진다. 북향은 이를테면 예술가의 향. 네덜란드의 화가 페르메이르의 대표작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분위기를 떠올리면 연상이 빠를까? 부드러운 기운이 벨벳처럼 차분하게 주변을 감싸는 듯한 느낌이 있지만 중요한 건 나는 예술가가 아니고 잘 나온 사진 한 장으로 금세 행복해지는, 지극히 세속적이고 평범한 인간이란 사실이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이런저런 배치와 구조의 집에 살아봐야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향도 그중 하나다. 집값이 바닥일 때 아파트를 잘못 팔아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본 후(말로 다 못 할 울분이여)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빌라와 한옥으로 이사를 다니고, 건축가와 작은 집까지 지어 살아 본 시간을 떠올리건대 나는 남향이 맞다. 환한 기운 속에 있으면 ‘오토매티컬리’ 몸에 활력이 돌고 거실과 책장, 식탁과 화분에 선물처럼 찾아든 빛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어느 때는 마룻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는 빛의 움직임만 쫓아도 심심하지 않고 묘한 위안을 얻는다.

동향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지만 좀 더 자고 싶은 나를 흔들어 깨우는 것 같은 과격함이 있고, 서향은 해질 녘 그 신비로운 빛이 아름답지만 그 빛을 만나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길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북향도 분명 그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어둡고 표정의 변화가 적어 내겐 버겁게 느껴진다. 나는 생기 넘치고 드라마틱한 집이 좋은데 말이지.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내 얘기고 저마다 합이 잘 맞는 향이 따로 있을 거다. 그리고 그것을 정확히 아는 것만으로 집을 좀 더 ‘확실하게’ 고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집의 시간도 한층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고. 또 이사를 가게 될 텐데 꼭 남향집으로!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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