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산재 사망 42% ↑…미 볼티모어 다리 붕괴로 드러난 이주노동 취약성

김효진 기자 2024. 3. 2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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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 재개 기약 없어…석탄 및 자동차 중심 공급망 압박 가중·항만 노동자 일자리도 비상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항만 교량 붕괴로 인한 희생자들이 라틴아메리카 출신 이주 노동자로 밝혀지며 이들의 노동 현장에서의 취약성이 재조명 받고 있다. 볼티모어항이 기약 없이 폐쇄된 가운데 석탄과 자동차 부문 중심으로 공급망 압박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항만 노동자 일자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AP> 통신을 보면 롤랜드 버틀러 메릴랜드주 경찰청장은 27일(이하 현지시각) 오전 수중 수색 작업 중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 붕괴 사고로 실종돼 사망 추정된 6명 중 2명의 주검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다리 중심부 기둥과 기둥 사이 7.6m 수심에 잠긴 빨간 트럭 내부에서 발견된 이들은 과테말라 출신 도를리안 로니알 카스티요 카브레라(26)와 멕시코 출신 알레한드로 에르난데즈 푸엔테스(35)로 확인됐다. 이들은 실종된 다른 4명과 함께 사고 당시 다리 유지 보수 작업 중이었다.

버틀러 청장은 주검이 발견되지 않은 실종 건설 노동자들이 타고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추락한 차량이 현재 교량 상부 구조물 등 잔해에 둘러싸여 잠수부들이 접근하기 너무 위험한 상태이기 때문에 실종자 수색 및 구조 작업을 종료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6일 오전 1시30분께 메릴랜드 볼티모어 항만을 가로지르는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에 전력을 소실한 싱가포르 선적 컨테이너선 달리호가 충돌해 다리가 순식간에 붕괴됐다. 이 사고로 다리 위에서 작업 중이던 건설 노동자 8명이 추락해 2명은 구조됐지만 다른 6명은 실종 뒤 사망 추정됐다.

이번 사고 희생자들이 과테말라, 멕시코,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등 라틴아메리카 출신 노동자로 알려지며 이주 노동자들의 취약성이 재조명됐다. 미 노동통계국의 지난해 10월 발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외국 태생의 히스패닉 및 라틴계 노동자는 미국 전체 노동자의 8.2%를 차지하지만 업무 관련 사망자로 분류하면 14%에 달한다. 이들 노동자 집단의 업무 관련 사망자 수는 2011년 512명에서 2021년 727명으로 42% 증가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이 집단 노동자 수는 16.7% 증가했다.

업무 중 사망자가 가장 많이 나온 업종은 건설 분야로 2021년 기준 274명이 사망해 외국 태생 히스패닉 및 라틴계 노동자 집단은 전체 건설 분야 업무 관련 사망자의 27%를 차지했다. 이는 2011년 19.8%에서 크게 증가한 것이다. 같은 기간 건설 분야의 업무 관련 사망자 중 미국 출생 비히스패닉계 백인 노동자 비율은 65.2%에서 51.5%로 감소했다.

<AP>를 보면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27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고 당시 멕시코 국민 3명이 다리 위에 있었고 그 중 1명은 구조됐지만 2명은 실종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 비극이 이민자들이 미국 경제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보여줬다면서 "이민자들은 한밤중에 밖으로 나가 위험한 작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의 일부 무감각하고 무책임한 정치인들로부터 지금 같은 대우를 받을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예멘 후티 반군이 가자지구 전쟁에서 팔레스타인 지지를 표명한다는 구실로 홍해에서 상선을 공격해 이미 세계 공급망이 압박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이번 다리 붕괴로 인한 항만 폐쇄는 또 하나의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볼티모어항은 미국 자동차 수입 및 석탄 수출의 주요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

영국에 기반을 둔 조선·해운시황 전문기관 클락슨리서치 이사인 스테픈 고든이 2023년 미국 자동차 수입의 15%가 이 항구를 거쳤다고 설명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매체는 볼티모어항을 통해 미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한 자동차 업체가 다리 붕괴가 향후 몇 달간 판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주요 유럽 자동차 수출 업체도 중개인들에게 차량 선적에 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매체는 설명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볼티모어는 버지니아주 노퍽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석탄 수출항으로 2022년 미국 석탄 수출의 5분의 1이 이곳을 거쳤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미 캠벨대 역사학 교수 살바토레 메르코글리아노가 "볼티모어는 주요 석탄 수출항으로 전문 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에 석탄을 다른 시설로 옮길 수도 없다"며 "볼티모어항 폐쇄가 미국 밖으로의 에너지 운송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고 전했다.

항구 재개 일정은 불투명하다. 피트 부티지지 미 교통부 장관은 27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항구 대부분이 붕괴된 다리 안쪽에 있고 이는 항구 대부분을 운영할 수 없다는 의미"라며 볼티모어항 운영이 언제 재개될 수 있을지 "추정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그는 "물길이 아무리 빨리 다시 열리더라도 하룻밤 사이에 이뤄질 수 없다. 그동안 관련 영향을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티지지 장관은 다리 복구에 걸릴 시간도 아직 알 수 없다며 이 다리 건설에 원래 5년이 걸렸다고만 설명했다. 그는 다만 "교체에 반드시 5년이 걸린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 존스홉킨스대 토목·시스템 공학 교수 벤자민 셰퍼 교수가 붕괴된 다리의 잔해를 치우고 볼티모어항과 연결된 운송 수로를 다시 여는 데 몇 주에서 몇 달 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했다고 전했다.

항구 폐쇄로 항만 노동자들의 일자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부티지지 장관은 항만 운영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자리가 8000개, 관련 임금은 하루 200만 달러(약 27억 원)에 이른다며 이는 "주요 우려 사항"이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관련해 정부에 투입 가능한 모든 자원을 찾으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AP>는 항만 활동과 간접적으로 연관된 일자리는 14만 개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미 CBS 방송은 27일 메릴랜드주 의원들이 항구 폐쇄로 실직한 노동자들을 위한 긴급 지원 법안을 마련 중이라고 보도했다.

▲26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항만을 가로지르는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에 싱가포르 선적 컨테이너선 달리호가 충돌해 다리가 무너졌다. ⓒAP=연합뉴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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