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아가위나무에서 피어난 골프의 시!

방민준 2024. 3. 28.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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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들이 프로 골프대회를 관람하는 모습이 그림자로 담겼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해리 바든(Harry Vardon), 제임스 브레이드(James Braid), 존 헨리 테일러(John Henry Taylor).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골프의 황금시대를 구가했던 영국 골프의 세 거장이다.



 



해리 바든이 6회, 제임스 브레이드가 5회, 존 헨리 테일러가 5회 등 이들 세 명이 21년 동안 디 오픈을 16회나 차지하는 불멸의 기록을 세웠다. 셋이 나란히 1, 2, 3위를 차지한 것도 3번이나 되었다니 세계 골프사에서 '세 거장'으로 추앙받는 것은 당연했다. 이들은 모두 1974년 9월11일 미국 노스캐럴라이나의 파인허스트에서 개관한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음은 물론이다.



 



아름다운 스윙으로 골프의 진수를 만끽하는 골퍼나 아름다운 스윙을 추구하는 골퍼라면 세 거장 중에서도 해리 바든에 대해 심심한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해리 바든의 이름을 딴 '바든 트로피'는 PGA투어에서 평균 스코어가 가장 낮은 골퍼에게 주어지는 상패다. 프로골퍼라면 누구나 이 트로피를 받는 것이 일생의 소원이다. '바든 그립(Vardon grip)'으로 골프 역사에 영원한 이름을 남긴 해리 바든은 바로 오늘날 전 세계 골퍼의 90% 이상이 사용하고 있는 오버래핑 그립(Overlapping grip)의 창시자다.



 



그의 스윙은 마치 교향악단을 지휘하는 지휘자의 그것처럼 우아해서 후세의 골프 사가들은 그의 스윙을 두고 '시화(詩化)한 스윙'으로 칭송하며 그에게 '완벽한 스타일리스트(Perfect Stylist)'라는 별명을 붙였다. 훗날 골프 사상 최초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전설적인 아마 골퍼인 구성(球聖) 바비 존스도 평생 해리 바든의 스윙을 흠모하며 비슷해지려고 노력했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바든이 7살 때 고향인 영국해협의 저지 섬에 골프장이 들어섰다. 가난한 섬 소년들은 용돈을 벌기 위해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했다, 바든도 예외가 아니었다. 소년들은 캐디로 일하면서 틈나는 대로 골프 연습을 했는데 비싼 골프채를 살 돈이 없어 나뭇가지로 골프채를 만들어 연습했다. 바든은 아가위나무로 클럽을 만들었다. 



 



아가위나무는 장미과 산사나무속의 낙엽교목으로 추운 지방에 서식한다. 우리나라에선 산사나무로 알려져 있다. 아가위나무는 순 우리말이다. 5월에 하얀색 꽃을 피우고 작은 사과를 닮은 붉은 열매를 맺는데 이 열매는 한약재로 쓰인다. 목질이 굳고 치밀하고 탄력이 있어 지팡이나 다식판, 책상 등의 용도로 애용되었다. 



 



바든이 만든 클럽은 손잡이 부분에 옹이가 돋아 있어 스윙할 때마다 손바닥이 매우 아팠다. 칼로 열심히 옹이를 깎아 냈지만 옹이 자국이 계속 말썽이었다. 이 무렵 골퍼들은 대부분 내추럴그립(야구선수가 야구방망이를 잡는 것과 같은 그립, 일명 베이스볼 그립)을 했는데 바든은 손바닥을 아프게 하는 이 옹이를 피해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왼손 인지에 올려놓고 왼손 엄지 위에 오른손의 엄지 부분 손바닥을 올려놓는 식의 그립을 해보았다. 바로 오늘날의 오버래핑 그립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 그립으로 스윙하자 볼은 전보다 멀리 그리고 정확하게 날아갔다. 소문이 퍼지자 친구 캐디들이 바든의 그립을 흉내냈고 마을의 골퍼들에게는 물론 영국 본토에도 알려져 삽시간에 바든 그립이 대유행하게 되었다. 아가위나무의 옹이에서 바든의 시화한 스윙이 탄생한 것이다.



 



해리 바든이 얼마나 정확한 스윙을 했는지는 그가 미국 원정길에 올랐을 때 미국의 젊은 프로들 간에 주고받는 것으로 전해지는 다음과 같은 대화 내용이 말해준다.



"바든은 같은 날 같은 코스에서 절대로 두 번씩 라운드하지 않는데."



"그건 왜?"



"바든의 샷이 너무 정확하기 때문이야."



"샷이 정확한 것 하고 무슨 관계가 있지?"



"바든의 샷이 얼마나 정확한지 두 번째 라운드에서 그가 날린 공은 오전에 라운드하면서 만든 디봇에 들어가 버린다는 거야. 디봇에 들어간 볼을 치려니 두 번째 라운드의 골프가 재미없어진다는 거지."



 



'스윙의 시인' 해리 바든은 이런 명언을 남겼다.



"골프의 스타일이란 좋거나 나쁘거나 간에 골프를 시작한 지 최초 1주일 안에 만들어진다."



 



시란 정련(精鍊)에 정련을 거듭해 나온 순도 높은 언어로 짜여진 감동의 표현이다. 탄성을 자아내는 세계적인 프로골퍼들의 스윙의 공통적인 특징은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다는 것이다. 문학 장르로 말하면 시다. 이들의 스윙은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무너져도 원상복구가 쉽다. 복잡한 스윙은 무너지기 쉽고 한번 무너지면 원상복구가 힘들다.



 



시는 외울 수 있지만 수필이나 소설은 외울 수 없다. 골프 고수들이 아름다우면서도 심플한 스윙을 권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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