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가 간첩 잡는 기관인가요?” 과거사 전문가들 지적

고경태 기자 2024. 3. 2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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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학살 과거사청산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
28일 오후 국회의원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진실화해위 민간인 학살 과거사청산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제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간첩 잡는 기관이 아니다. 그리고 유족은 간첩이 아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들을 근거 없이 ‘부역자’로 몬다는 비판을 받는 김광동 위원장 체제의 진실화해위에 대해 학계와 법조계, 유족 등 시민사회가 더는 좌시할 수 없다며 토론회를 열었다. 2020년 12월 2기 진실화해위 출범 이후 시민사회가 민간인 학살 과거청산에만 집중해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자리를 만든 것은 처음이다. 참석자들은 “진실화해위를 설립 취지에 역행하여 직권을 남용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를 하는 기관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며 “연대체를 만들어서 대응할 때”라고 목소리를 냈다.

‘진실화해위 민간인학살 과거사청산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28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이 토론회엔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등 역사학자와 윤호상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피학살자유족회) 상임대표 의장 등 희생자 유가족 대표, 인권단체 회원 60여명이 참석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등 1·2기 진실화해위 상임위원과 전·현직 조사관들도 참석했다. 이날 행사는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와 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윤미향 국회의원실 등이 주최했다.

‘양민학살인가 민간인 학살인가’라는 주제로 발제에 참여한 노용석 부경대 교수는 “1990년대 후반까지 한국 사회의 학살에 대한 개념은 ‘양민’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때 ‘양민’이라 함은 ‘착한 백성’, 즉 좌익혐의가 전혀 없는 깨끗한 사람을 말한다”며 “2000년대를 전후해 학계 및 시민 사회단체에서는 학살의 범주를 ‘민간인’으로 재규정했으며, 이때 ‘민간인’은 ‘무장하지 않은 비전투요원’의 범위로서 좌익 혐의자라 할지라도 정당한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무참하게 학살된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또 “전 세계 과거사 청산을 연구하면서 다양한 국가의 진실화해위 활동을 분석했지만 ‘전쟁 중 민간인에 대한 비사법적 처벌이 정당’하다거나 ‘작전 중 적으로 의심되는 이들을 죽여도 된다’거나 ‘전쟁 중 적대행위자로 의심되는 민간인을 즉결처분한 것이 정당하다’는 사례를 들어본 적 없다”고 말했다. 민간인 학살 자체가 아닌 학살 피해자의 부역 혐의 등에 집중하는 현재 진실화해위의 태도가 과거사 청산의 보편적 흐름에 역행한다는 의미다.

지난해 10월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과 이옥남 상임위원, 한 사람 건너 황인수 조사1국장(오른쪽부터).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김상숙 성공회대 연구교수도 “피해자 진실규명 기관이었던 진실화해위가 공안기관으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나타난 2기 진실화해위의 특징에 대해 △이승만 정권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한국 군경의 불법적 학살을 인정하지 않거나 축소 △과거사 정리를 일종의 배보상에 국한된 문제로,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과정을 배보상 예비심사 정도로 여김 △피해자를 심사해 일부 피해자에게 ‘악질 부역자’ ‘적대행위자’ 등으로 프레임을 씌우고 진실규명 대상(배보상 대상)에서 배제 등으로 정리했다.

김 교수는 1기 진실화해위(2005~2010)의 조사관으로 2007년 11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영천지역 신청인 참고인 276명을 조사한 경험이 있다. 지난 10월31일 진실화해위 제65차 전체위원회에서는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사건 희생자 6명이 영천경찰서 대공인적위해자조사표 등 사찰자료에 적힌 ‘살인’ 등을 근거로 해 진실규명이 보류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영천경찰서 자료는 1960년 4대 국회가 작성한 양민피살자 신고서와 비교한 결과 ‘처형자’와 ‘가족’의 인적사항은 다른 자료보다 더 정확하게 기록돼 있었지만 ‘처형 시기’와 ‘처형 사유’는 참고인들의 진술과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며 “처형사유 등의 기록만을 강조해 진실규명 불능 근거로 삼는 것은 자료를 오용·악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실화해위의 조사불능 결정 등이, 그나마도 부정확한 자료에 기대어 있다는 얘기다.

토론자로 참여한 이상희 진실화해위 위원은 “2005년 진실화해위 기본법이 제정될 당시 정치적 타협으로 진실규명 대상에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이 포함되었는데, 당시 과거 청산이 ‘인권회복의 문제가 이념논쟁으로 훼손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비판과 우려가 제기되었는데 2기 진실화해위에서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며 “1·2기 진실화해위 모두 처음 민주당 정부 때 설립됐지만 진실규명 작업이 이뤄질 때는 정권이 넘어갔다. 과거사 청산이 의미를 가지려면 진상규명이 민주주의 실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유가족들도 현재 진실화해위를 바로 잡기 위해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재근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집행위원장은 “4·19혁명으로 유족회를 결성했다가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수난과 고초를 겪은 바 있는 유족들은 현 진실화해위의 정치적·역사적 편향에 분노와 두려움이 교차하기도 한다”며 “두려움을 이겨내고 분노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28일 오후 국회의원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진실화해위 민간인 학살 과거사청산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윤미향 의원실 제공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고나린 기자 m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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