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노동’ 둘러싼 두 가지 시선…‘최저임금 차등적용’ 가능할까?

최유경 2024. 3. 2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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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서비스직에 외국인 노동자를 도입하되, 이들에 대한 임금을 낮춰 수요자의 비용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 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를 둘러싼 논쟁이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내 노동자만으론 고령화 사회에서 급증하는 돌봄서비스 수요를 모두 충족할 수 없으니, 외국인력을 도입하되 이들에게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줘서 높은 비용 부담을 덜자는 제안입니다.

[한국은행 이슈노트] [제2024-6호]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하지만 노동계는 한국은행의 진단부터 해법까지 모두 잘못됐다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돌봄의 공공화', 즉 돌봄서비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인데, 오히려 돌봄노동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까지 드러내고 있다는 겁니다.

양쪽 모두 우리 사회에서 돌봄노동 수요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인식은 공유하지만, 방점을 두는 부분이 완전히 다른 셈입니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참여연대는 오늘(28일) 국회에서 ‘돌봄서비스 외국인력 도입 쟁점과 과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제공: 녹색정의당 이자스민 의원실)


■ '돌봄노동', 어떻게 바라볼 건가?

한국은행과 노동계는 '돌봄노동'을 정의하는 방식부터 다른 접근을 보여줍니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돌봄 노동의 '생산성'에 주목합니다. 돌봄노동이 제조업이나 건설업 등에 비해 생산성이 낮은 노동이기에, 이런 곳에 내국인 노동력이 몰리는 것은 경제 전체의 자원 배분 측면에서도 효율적이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타 산업에 비해 돌봄서비스 부문의 생산성이 매우 낮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를 반영한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중장기적으로 가격 왜곡을 줄이고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등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노동계는 돌봄노동의 '사회적 가치'에 방점을 둡니다.

한국노동연구원 조혁진 연구위원은 오늘(28일) 한국노총·민주노총·참여연대 주관으로 국회에서 열린 '돌봄 서비스 외국인력 도입의 쟁점과 과제' 토론회에서 돌봄노동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돌봄노동: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노동이지만, 필요한 만큼의 사회적 인정과 대우를 받지 못하는 노동"

헌법과 사회보장기본법, 사회보장법 등에 따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는 돌봄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지금은 민간에 떠맡겨져 불안정한 계약형태와 저임금, 낮은 사회적 인정을 감내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돌봄노동을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한국은행과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노동계 사이엔 시작부터 큰 간극이 있어 보입니다.

■ '돌봄노동', 어떻게 해결할 건가?

한국은행 보고서는 돌봄노동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첫째는 개별 가구가 '사적 계약'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방안, 둘째는 '고용허가제' 대상 업종에 돌봄서비스업을 포함하고 이 업종에 대한 최저임금을 상대적으로 낮게 설정하는 방안입니다.

두 방안 모두 외국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합니다. 해외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고 했습니다.


노동계는 이같은 한국은행의 제안은 돌봄노동의 '비공식부문'을 확대하자는 발상으로, '돌봄의 공공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한다고 했습니다. 돌봄에 대한 국가 책임을 희석시킨다는 겁니다.

현재도 '비공식부문'에 속하는 가사·간병 노동자의 규모는 파악조차 하기 어렵고 과세 대상에도 포착되지 않는다며, 최소한의 노동 환경조차 보장되기 어려운 환경을 지적했습니다.

게다가 한국은행의 논리대로라면 국내 노동자를 비롯한 돌봄서비스업 자체에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할 수 있게 되고, 이는 또 다른 '단순노무직'으로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 노동계 "돌봄 일자리 질부터 높여야"…고용부 "가능성 보려는 것"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남우근 소장은 토론회에서 '돌봄노동'의 문제는 "우리 사회 구성원 그 누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암묵적 카르텔 구조 속에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주로 중장년 여성에게 싼값으로 돌봄노동을 떠넘겨 쉽게 해결하고자 하는 인식, 그 자체를 문제 삼은 겁니다.

이젠 저임금, 고용불안, 비인격 대우, 사회적 저평가 등 일자리 환경과 함께 돌봄노동의 가치와 공공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조혁진 연구위원도 " 돌봄 영역의 일자리 질 개선을 하지 않으면 내국인은 물론이고 외국인도 와서 일하기 어렵다"며 돌봄 노동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현재의 구조를 먼저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돌봄서비스는 특히 노동자와 수혜자의 관계 맺음에 따라 그 품질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데, 지금처럼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에 잦은 퇴직이 반복된다면 '괜찮은'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참여연대는 오늘(28일) 국회에서 ‘돌봄서비스 외국인력 도입 쟁점과 과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제공: 녹색정의당 이자스민 의원실)


토론회를 지켜본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돌봄의 경우 비용 문제 못지 않게 서비스의 신뢰성도 굉장히 중요한 거 같다"며 "2022년 가사근로자법이 제정돼 시행되는 등 정부 차원에서도 비공식 영역에 있던 돌봄을 공식 영역으로 옮겨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외국인력 도입에 대해선 "이게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건 당연하다"며 "돌봄 일자리 질이 높지 않다는 문제도 있고, 매칭의 문제도 있다. 그런 부분을 같이 고려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전면적 도입이 아닌 100명 정도의 '시범사업'으로 시작하는 것이라며 "가능성을 보고자 하는 것이므로 현장 수요와 작동 방식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필요한 게 있다면 보완하려고 노력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래픽: 이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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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경 기자 (6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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