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썰] 양육비 미지급으로 사라진 10년…법은 복잡하고 부족하다

박현주 기자 2024. 3. 2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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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예방을 위해서라도 징역형의 실형이 필요합니다”

어제(27일) 낮 12시쯤 인천지법 대법정. 성인혜 판사는 10년 동안 1억 원 가까운 양육비를 주지 않은 45살 박 모 씨에게 징역 3개월을 선고했습니다. 그리고 법정 구속했습니다. '나쁜 아빠'에게 선고된 첫 실형 사례입니다.

두 손 움켜쥐고 지켜보던 피해자 김은진 씨. 선고가 나자 “감사합니다” 혼잣말하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법정에 오기 전 13살, 11살 아이들은 “엄마 힘내”라며 웃었습니다. 선고가 난 순간, 그 웃음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힘들었던 지난 10년도 스쳐 갔습니다.

240327 JTBC 뉴스룸 보도 캡쳐.

10년 동안 밀린 양육비만 1억 원


2013년 4월. 김 씨는 전 남편과 이혼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폭행과 폭언 때문입니다. 1년 뒤 법원은 김 씨에게 양육권을 줬습니다. 전 남편 박 씨에게는 두 아이가 성년이 될 때 까지 양육비로 매 달 80만 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돈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두 아이 데리고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양육비를 달라고 연락했지만 전 남편은 '변호사와 얘기하라'고 했습니다. 10년이 흘렀습니다. 밀린 양육비는 9600만 원에 이릅니다.

240327 뉴스룸 보도 캡쳐.

소송 시작하기조차 쉽지 않다


결국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절차가 복잡했습니다. 형사 재판 하려면 먼저 법원에 이행 명령을 신청해야 합니다. 그러고도 세 차례 넘게 양육비를 못 받으면 감치 명령을 신청해야 합니다. (감치는 법원 명령을 위반한 사람에게 재판부가 직권으로 구치소 등에 가두는 걸 뜻합니다.) 감치 명령이 나온 이후에도 1년 동안 양육비 못 받으면 그제야 형사 고소를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동안에도 생활은 이어집니다. '양육비 이행 명령→감치 명령→형사고소→수사→재판'으로 이어지는 이 과정,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소송을 포기하는 게 더 빠를지 모릅니다.

김은진씨가 인터넷 검색창으로 법률 용어를 공부해가며 종이에 적은 사건 일지. [독자 제공]

법을 모르는 김 씨가 의지한 건, 인터넷 포털 검색창이었습니다. 처음 듣는 법률 용어들을 검색하느라 하루도 핸드폰을 놓은 적이 없었습니다. 생소한 단어들은 종이에 모두 적고 절차를 익히며 대응했습니다. 법원의 감치 결정만 두 번 받아냈습니다. 그마저도 전 남편이 거주지에 없다는 이유로 집행되지 않았습니다.

2년 걸린 소장 접수...그러고도 삶은 '전쟁'


2년이 지나서야 고소장을 접수할 수 있었던 김 씨, 1인 시위를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8월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전 남편은 “직업이 없고 건강이 좋지 않아 양육비를 못줬다”고 항변했습니다. 김 씨는 스스로 반대 증거를 모아야 했습니다. 전 남편이 일하던 인천항을 찾아가 관계자들을 설득했습니다. 포크레인 기사로 일한 출근 기록 등을 확보해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그러자 전 남편은 재판부를 향해 “일은 하고 있지만 정식 직원은 아니다”고 읍소했습니다.

소송 챙기는 사이 생계 꾸리기는 더 힘들어졌습니다. 낮에는 소송 준비하고 밤엔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김씨 아버지 어머니는 도넛 장사를 해서 번 돈 6~7만 원을 육아에 보탰습니다. 아기 분윳값, 기저귀 값 메우는 건 매달 벅찼습니다. 힘들고 고단한 시간이었습니다.

다 큰 딸과 손자들 생활비 보태느라 매일 일하던 아버지, 3달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눈 감는 순간까지 손자들이 걱정이었습니다. "하늘에서라도 딸아, 아빠가 지켜줄게. 애들하고 너 아빠가 지켜줄게.”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어제(27일) 인천지법에서 양육비 미지급 사건 선고 후 취재진에게 가족 사진을 보여주는 피해자 김은진씨. [뉴스룸 보도 캡쳐]

이제야 첫 실형 선고, 왜?


양육비 지급하지 않은 부모에게 실형이 선고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일단 법을 만든 지 얼마 안 됐습니다. 양육비 주지 않는 부모를 형사 처벌할 수 있게 된 건 지난 2021년 7월부터입니다.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27조 벌칙 조항에 처벌 규정이 추가됐습니다. 조항이 생겨났지만 처벌 사례는 없었습니다. 지난해 7월부터 지금까지 양육비 미지급 선고 7건 모두 공소 기각 결정이 나거나 유죄가 나오더라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판결에 그쳤습니다.

피해자들은 형사 처벌이 기댈 수 있는 '최후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나쁜 아빠들은 법도 인륜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형 선고 나오기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한 법률 전문가는 “배우자에게 돈 달라고 하는 소송은 개인 간 채무 문제, 민사 소송으로 여겨지기 쉬운데 형사 재판으로 넘어오게 되니 어색해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법률가들이 아직 가족 문제를 형벌로 해결하는 게 맞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양육비 미지급, 아동학대로 봐야


하지만 이런 인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서울고법 한 부장판사는 “이건 엄마와 아빠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와 미성년 자녀의 문제”라며 “오랫 동안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서 아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게 본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형사 사건 관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동이 얼마나 방치되어왔는지, 학대의 개념으로 살필 수 있는 겁니다.

법원에서 나쁜 아빠에 대한 첫 실형 선고가 나왔지만, 피해자 대부분은 현실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여성가족부 통계를 보면 행정제재를 받고도 양육비를 안 주는 부모가 10명 가운데 8명꼴입니다.

피해자들은 생존을 건 갈림길에 섭니다. 소송 가시밭길을 택하느냐, 억울해도 매일을 살아가느냐. 피해자들은 '법은 멀고 현실은 혼자 아이 키우는 사람에게 가혹하다'고 말합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어쩌면 '가혹하다는' 말로도 부족할지 모릅니다.

※관련 기사
양육비 안 준 '나쁜아빠' 첫 실형…징역 3개월에 법정 구속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2171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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