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볼판정시스템과 프레이밍의 상징적 교차

양중진 변호사 2024. 3. 28.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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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 볼 판정 시스템 도입

지난 주말 2024 프로야구가 개막되었습니다. 10개팀이 가을야구를 향해 힘차게 스타트를 끊었는데요. 추운 겨울 동안 새로운 선수도 뽑고, 코칭스태프도 정비하고, 동계훈련도 열심히 한 만큼 모두들 응원하는 구단의 우승을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올 시즌 프로야구는 달라진 점이 몇 가지 있는데요. 베이스의 크기가 달라졌고, 피치클락이 새로 도입되었습니다. 물론 피치클락은 정식 도입이 아니긴 하지만, 결국에는 도입될 제도인 만큼 어느 선수와 구단이 잘 적응할지 여부도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 시즌에 달라진 규정 중 가장 큰 변화는 뭐니뭐니해도 '자동 볼 판정 시스템(ABS)'인 것 같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심판의 판단으로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이 결정되다 보니 선수들과 벤치의 항의가 심심치 않게 있었지요. 게다가 볼 판정 하나로 인해 경기의 흐름이 바뀌어 승패까지 좌우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수도, 벤치도, 심판도 예민해져 승부보다는 판정 자체에 집착해 보는 재미를 반감시키는 경기도 있었지요.

반대투구도 정확히 판정

지난 주말 개막경기에서도 선수들의 생각과 다르게 투구에 대한 판정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었는데요. 특히 포수가 타자의 바깥쪽으로 완전히 빠져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인코스나 한가운데로 투구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소위 '반대투구'의 경우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경우 심판도 방심하고 있다 보니 볼과 스트라이크에 대한 판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제법 있었지요. 존을 통과한 것이 분명한데도 순간적으로 기회를 놓쳐 볼이라고 선언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ABS가 도입된 이후로는 반대투구의 경우에도 판정이 정확히 이루어졌습니다. 시스템 자체가 포수의 위치에 상관없이 공의 궤적만으로 판단하게 설계되어 있으므로 가능한 일이지요.

덕분에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에 대해 심판에게 항의하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심판의 '자의적(恣意的)'인 판단이 아니므로 심판에게 항의하는 일이 무의미해졌기 때문이지요.

ABS의 피해자도 생겨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ABS시스템'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선수도 생겼는데요. 바로 포구 기술이 뛰어난 선수들. 즉, 프레이밍(framing) 기술이 뛰어난 포수들입니다. 프레이밍은 포수가 포구를 할 때 미트의 움직임이나 위치 등을 통해 마치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온 것처럼 심판의 눈을 속이는 기술을 말합니다. 심판은 기계와는 달리 눈을 통해 볼을 판정하므로 볼의 궤적뿐만 아니라 포수의 포구 동작도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데요. 이런 불완전성을 이용한 기술이 바로 프레이밍입니다.

포수의 프레이밍으로 인해 투수들의 사기가 올라가 더 좋은 투구를 보여줄 수도 있고, 중요한 순간의 볼 판정 하나로 경기의 승패가 바뀔 수도 있지요. 그러다 보니 프레이밍을 잘하는 포수들이 좋은 포수로 평가되어 몸값이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ABS시스템의 도입으로 인해 프레이밍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습니다.

반사적인 영향으로 도루가 좀 더 어려워졌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포수들이 포구 동작에 의한 프레이밍 대신 주자가 있는 상태에서는 도루 저지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특별한 포구 기술 대신 도루를 저지하기 위한 송구에만 신경을 쓰게 되므로 포구 후에 송구 동작이 더 빨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형법상 위계에 해당하진 않을까

그런데 여기에서 직업적인 의문이 하나 드는데요. 바로 프레이밍은 심판의 눈을 속인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속인다는 것은 형사적으로 보면 '위계(僞計)'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계는 남을 속이기 위해 거짓으로 만든 계획이나 계략을 말하는데요. 위계를 대표적인 행위태양으로 규정한 범죄들이 있지요. 바로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형법 제137조)와 업무방해죄(형법 제314조)입니다. 형법 제137조는 '위계로써 공무원의 직무집행을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형법 제314조는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거나 기타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심판은 공무원이 아니므로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프레이밍은 혹시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는 않을까요. 포구 동작이나 공을 잡는 미트의 위치 등을 통해 볼 판정을 하는 심판을 속여 심판의 업무를 방해한 것이니까요.

어떤가요. 완벽한 이론 구성 아닌가요? 하지만, 결론부터 말해 프레이밍이 형법상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는 않습니다. 대법원은 위계에 대해 '공무원의 불충분한 감시·단속에 기인한 것이지, 행위자 등의 위계에 의하여 공무원의 감시·단속에 관한 직무가 방해되었다고 할 수 없을 것(대법원 2005. 8. 25. 선고 2005도1731 판결, 대법원 2010. 1. 14. 선고 2009도10659 판결 등 참조)'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선수가 눈속임을 하려고 하더라도 심판은 눈을 부릅뜨고 잘 살펴서 올바르게 판정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계성과 인간성의 조화 필요

ABS의 도입으로 인해 프레이밍을 보는 묘미가 사라졌다는 아쉬운 목소리도 들립니다. 아마 산업기술이 발전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선수 개인의 기술적인 역할은 축소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에 따른 아쉬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정확한 판정 VS 포수의 기술. 정확성 VS 인간성. 기계 VS 인간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 칼럼니스트 소개 -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 변호사 (검사의 대화법, 검사의 스포츠, 검사의 삼국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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