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동남아 인재’ 정착 도울 때다[시평]

2024. 3. 2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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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보조금 지원하는 美·日과 달리
한국 정부는 인프라 구축 치중
반도체 인력 공급 오히려 감소
베트남 말레이 인재 유치 가능
韓 대학원 거쳐 용인 근무 이끌
행정적 문화적 기반 구축해야

최근 미국 정부가 반도체 기업에 대한 대규모 지원책을 발표했다. 자국 기업인 인텔이 미국 내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짓는 대가로 약 26조 원의 지원을 약속했고, 삼성에는 약 8조 원의 보조금을, 대만 TSMC에는 약 6조6000억 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계획도 밝혔다. 일본도 TSMC 공장 유치를 위해 이미 약 4조 원을 지원한 데 이어 추가로 약 8조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독일 역시 인텔에 최대 14조 원 지원 계획을 세우는 등 세계 주요국 간 반도체 생산기지를 구축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우리나라 정부는 보조금을 직접 지급하지는 않지만, 반도체 기업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는 적극적이다. 대표적으로 경기도 용인에 국가산업단지를 지정하고,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및 팹리스 기업 등을 유치해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단지를 구축하며, 전력·용수·도로 등의 인프라 지원과 노동·금융 등 규제 완화 및 투자세액 공제 등 다양한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충분한 인력 공급도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다. 반도체 인력 부족이 심해지기 때문에 세계 각국 정부는 인력 양성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인력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에 산업체의 수요가 증가하면 공급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즉, 미국의 주요 대학에서 최근 반도체 분야의 정원이 늘고 있다. 또한, 미국의 실리콘밸리에는 세계적인 인재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인력난이 심각하지는 않다. 필자가 미국 인텔에 근무할 당시에도 회사 내 미국인보다 외국인이 훨씬 더 많았다.

반면, 우리나라는 반도체 인력 공급에 어려움이 많다. 대학에서 반도체 분야 학과의 정원이 고정돼 있어 산업 수요가 늘더라도 정원을 늘리기가 어렵다. 삼성전자의 매출이 20년 전에 비해 약 3.5배 늘었지만,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의 정원은 오히려 줄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유사한 판교 테크노밸리에는 많은 정보기술(IT) 기업이 모여 있지만, 외국인 직원이 그다지 많지 않다. 따라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판교 테크노밸리를 뛰어넘어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되기 위해서는 외국인 인재들이 모여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동안 정부에서 외국인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고, 그 결과 많은 외국인 학생이 국내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이들이 졸업 후 국내에 정착하기 위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미흡했다. 필자의 대학원 연구실에도 그동안 18명의 학생이 정부의 지원을 포함한 다양한 경로로 입학했다. 하지만 그중 국내에 남아서 취업한 케이스는 4명밖에 안 된다. 이들 대다수가 서울대생들과 비슷한 수준의 우수한 학생이었지만, 아쉽게도 이들을 국내 산업체에서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필자는 지난 2월 초에 대학 교류 목적으로 베트남과 말레이시아의 여러 대학을 방문했다. 동남아 대학에는 우수한 인재가 많지만, 대개는 학부만 마치고 취업하는 상황이다.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대개 해외로 유학을 간다고 했다. 학생들을 다수 만나 보니 우리나라 대학원 유학을 희망하는 최상위권 수준의 학생도 많았다. 특히, 한류 영향으로 한국어를 배워서 소통이 가능한 학생들도 있었다.

학생들을 입학시키기보다 더욱 중요한 일은, 졸업한 학생들이 국내 기업에 취업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처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많은 외국 학생이 정착도록 하기 위해서는 외국인이 살기 편한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실리콘밸리와 비교해 외국인들이 얼마나 편리하게 살 수 있는지가 용인 클러스터 경쟁력의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따라서, 전력·용수·도로 등의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외국인들이 생활하기 편리한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지원도 그에 못잖게 중요하다. 외국인들을 위한 비자 간소화, 교육 및 의료 시설에 주거 제공 같은 외형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경쟁력 있는 용인 클러스터가 구축되고, 그 결과 반도체 인력난이 해소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혁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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