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왜 진실화해위원회 복도를 점거했나 [스프]
지난 12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 사무실 복도에선 고성이 오갔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학살당한 민간인 피해자 유가족 등으로 구성된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 회원들이 진실화해위에 항의하기 위해 방문한 겁니다. 회원들은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약 1시간 반 정도 복도에서 농성을 벌였습니다. 이들은 왜 진실화해위에 분노했을까요?
사살자 명단에 적힌 '암살대원' 4글자의 무게
그런데 문제는 희생자의 숫자입니다. 진실화해위는 조사 대상자 41명 가운데 35명에 대해서만 진실 규명 결정을 내리고, 나머지 6명에 대해서는 '보류'했습니다. 2명은 '증거가 불충분하다', 나머지 4명은 1969년 12월 진도경찰서가 기록한 '사살자 및 동 가족 동향 명부'에 '암살대원'이라는 4글자가 적혀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진실 규명 뒤 임의 재조사 지시' 결국 형사 고발
함평 사건은 1949년 11월부터 1951년 3월까지 전남 함평군에서 경찰과 국군 11사단이 빨치산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여섯 차례에 걸쳐 민간인 500여 명을 학살한 사건입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2023년 11월 28일 제67차 전체위원회에서 사건 13건에 대해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결정 이후 김 위원장이 희생자 1명에 대해 재조사를 지시했고, 조사관들이 올해 1월 24~25일 대전과 함평 등을 돌면서 이미 의결된 사건에 대한 탐문 조사를 벌였다는 겁니다.
전남 함평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에 관한 진실 규명 결정문에는 그 결정일이 2023년 11월 28일로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에는 2024년 1월 24일자 및 2024년 1월 25일자 참고인 진술 조서가 인용되어 있는 등 굉장히 이상한 형태의 진실 규명 결정문이 진실 규명 신청인들에게 배포되었습니다.
2024. 3. 21. 권태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장
앞서 김 위원장은 "해당 사건의 가해 주체 등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해 거친 절차였다"며, "생년월일과 이름, 날짜 등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 최종 결재를 하려 했다"고 말했습니다. 해당 사건의 가해 주체는 당초 '적대세력'이었다가 진실화해위 조사 이후 '군경'으로 바뀌었는데 이 과정이 적절했는지 재조사하겠다는 겁니다. 사실상 전체위원회가 이미 의결한 결론을 위원장이 원점으로 돌리려 시도한 셈입니다.
국가폭력 피해자 보상이 '부정의'라고 말하는 진실화해위원장
침략자에 맞서서 전쟁 상태를 평화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 군인과 경찰이 초래시킨 피해에 대해서는 1인당 1억 3,200만 원의 보상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부정의'가 펼쳐지는지는 저는 대한민국에서 처음 봤습니다.
침략자에 의해 초래된 희생은 감추고, 침략을 막는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을 '국가범죄, 국가폭력'이라는 이름으로 교육하고 1억 3,200만 원씩 보상해주고 있습니다.
2023. 6. 9.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조찬기도회 강연)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평화 상태로 만들기 위해 초래시킨 피해'라고 치부하는 것부터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부정의'라고 말하는 것까지, 국가에 의한 폭력과 인권 유린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의 명예를 찾아주는 게 책무인 진실화해위원회 수장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발언입니다. 김 위원장은 또 "전시에는 재판 없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 이성만 의원: 한국전쟁 시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족을 만난 자리에서 '전시하에서는 재판 없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이런 발언을 했습니까?
▶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 그런 취지의 발언을 명백하게 했습니다.
▷ 이성만 의원: 사람이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피해자로 인식할 필요가 없다, 이런 뜻입니까?
▶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 적대세력에 가담해서 방화와 살인을 저지르는 가해자에 대해서는 당시 상황에서 즉결처분이 가능했다, 이 말씀입니다.
2023. 10. 13.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
그렇다면 과연 김광동 위원장이 말하는 "적대세력에 가담해서 방화와 살인을 저지르는 가해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형래 기자 mra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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