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위에서 도로 보수하던 중남미 이주노동자들 ‘새벽 날벼락’

최혜린 기자 2024. 3. 2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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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명 구조, 6명 실종…“붕괴 직전까지 대피 명령 못 받아”
철강·페인트 공장 등 인접한 ‘노동자의 다리’에서 비극
처참한 모습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항 초입 퍼탭스코강에 위치한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 일부가 지난 26일 새벽(현지시간) 발생한 대형 컨테이너선의 교각 충돌 사고로 무너져 있다. UPI연합뉴스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발생한 교량 붕괴 사고 당시 다리 위에 남아 있던 이들은 모두 도로 보수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로 파악됐다. 사고 선박이 충돌 전 조난 신고를 보내 추가 인명 피해는 막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이른 새벽 작업을 하던 인부들은 붕괴 직전까지 대피하지 못했다.

26일(현지시간) AP통신 등 미 언론에 따르면 이날 오전 1시28분쯤 컨테이너선 ‘달리’가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와 충돌하며 발생한 교량 붕괴 사고로 교량 위에 있던 8명이 강물에 추락했다. 이 중 실종된 6명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2명은 구조됐다. 미 해안경비대는 이날 오후 7시30분쯤 실종자에 대한 수색·구조 작업을 종료했다. 섀넌 길레스 해안경비대 소장은 이날 밤 기자회견에서 수온이 낮고 실종 후 많은 시간이 경과했음을 언급하며 “현시점에서 생존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 8명은 모두 교량 위 도로에 움푹 파인 구간을 보수하던 인부들이었다. 사고 당시에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그러나 이들은 붕괴 직전까지도 대피명령을 받지 못했다. 현지 경찰은 달리호의 조난 신고를 접수한 뒤 다리 위의 인부들에게 무전을 보냈지만, 직접 대피 경고를 전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다리가 붕괴된 것으로 알려졌다. 달리호는 충돌 직전 조난 신호를 보내 메릴랜드주 당국이 교량의 차량 통행을 제한하도록 했다.

인부들은 메릴랜드주에 있는 한 건설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한 이주노동자였다. 이들은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멕시코 출신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과 같은 회사에서 함께 일한 지저스 캄포스는 “그들과 나는 모두 저소득층이었고, 고향에 있는 가족과 친척들은 우리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그들은 내 동료이자 친구였다. 이 상황이 너무 힘겹다”고 말했다.

이날 사고로 붕괴된 키 다리는 ‘노동자 집단의 상징’과도 같았다. 다리의 양쪽 끝 지역에는 대규모 철강 공장과 페인트 공장 등이 있어 이 도시의 노동자 집단에 중요한 통행로였기 때문이다. 전직 볼티모어 시장이었던 커트 슈모크 볼티모어대 총장은 “이 다리는 블루칼라(노동계급)의 다리였고, 노동자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볼티모어 노동자 계급에 대한 책을 12권 이상 집필한 라파엘 알바레스는 “이 다리는 물리적으로, 그리고 은유적으로 볼티모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처참하게 무너진 교량의 모습에 현지 주민들도 충격에 휩싸인 모습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날 일출 무렵에는 시민 50여명이 건너편 강가에 나타나 사진을 찍거나 탄식하며 황망함을 드러냈다. 볼티모어의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다 은퇴한 제임스 메츠거는 “내가 처음 운전면허를 땄을 때는 이 다리가 강을 건너는 유일한 통로였다”면서 삶의 일부와도 같았다고 회상했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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