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인가 애국자인가?"…홍종우, 개화파 거두 김옥균을 쏘다 [역사&오늘]

김정한 기자 2024. 3. 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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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3월 28일,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은 중국 상하이에서 총탄 3발을 맞고 43세에 숨을 거뒀다.

암살자는 조선인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 출신으로, 김옥균보다 한해 먼저 태어난 홍종우였다.

홍종우는 1894년 귀국 후 김옥균 암살자로 더 이름을 알리게 된다.

꽤 오랜 기간 홍종우는 김옥균 암살자 내지 수구 세력으로 낙인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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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8일, 조선 최초 프랑스 유학생 출신 홍종우의 김옥균 암살
암살당하는 김옥균(출처: Utagawa Kunimasa, 신문삽화(1894),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94년 3월 28일,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은 중국 상하이에서 총탄 3발을 맞고 43세에 숨을 거뒀다. 암살자는 조선인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 출신으로, 김옥균보다 한해 먼저 태어난 홍종우였다.

홍종우는 1850년 경기도 안산에서 태어났다. 몰락한 가난한 양반 가문에서 성장하며 여러 곳을 전전하며 어렵게 지냈다. 1886년 일본으로 건너가 2년간 일하며 일어와 불어를 익히고 자금을 모아 1890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 시절 그는 서구 문명과 사상을 흠모했지만, 당시 유럽 국가들의 제국주의의 속성을 간파하고 경계했다. 또한 '춘향전', '심청전', '직성행년편람'을 불어로 번역해 한국 고전 문학을 유럽에 알렸다. 사서로 일했던 기메박물관(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서는 한국 문화 전시실을 만드는 데도 공헌했다.

홍종우는 1894년 귀국 후 김옥균 암살자로 더 이름을 알리게 된다. 당시 1884년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을 거쳐 중국에 망명 중이던 김옥균은 당시 조선 왕실엔 역적이자 눈엣가시였다. 홍종우는 김옥균의 행동이 조선에 해를 준다고 판단, 조선 정부의 밀명을 받고 김옥균에게 접근해 암살을 실행했다.

그는 귀국 직후 고종의 신임 속에서 홍문관 교리에 임명돼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고종에 대한제국 선포를 건의한 사람도 그였다. 대한제국 정부에서는 요직을 두루 역임하며 열강의 이권 침탈에 맞서고, 각종 제도의 개혁을 주장했다. 김옥균을 동정하는 여론이 형성된 후 살인자라고 비난받기도 했지만, 자신의 애국심으로 결행한 거사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꽤 오랜 기간 홍종우는 김옥균 암살자 내지 수구 세력으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최근 그에 대한 재평가도 나온다. 그 역시 개화파의 일원이었고, 다만 외세를 이용하려던 급진개화파와는 달리 자주적, 점진적 근대화를 지향했다는 것이다. 1913년,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에 대한 현재 평가는 엇갈린다. 좀 더 연구가 필요한 인물이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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