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작은 이정후 뿐..FA 시장서 자존심 구긴 보라스의 실패한 겨울[슬로우볼]
[뉴스엔 안형준 기자]
'보라스의 고객'들이 모두 행선지를 결정했다. 본토 정규시즌 개막을 바로 앞두고 마지막 선수까지 팀을 찾았다.
최근 겨울마다 대성공을 거둔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는 이번 오프시즌에도 '대박'을 노렸다. FA 시장 최대어로 손꼽히는 선수 중 다수가 '보라스의 고객'들이었다.
지난해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하며 양대리그 사이영상 수상에 성공한 좌완 블레이크 스넬을 비롯해 텍사스 레인저스의 창단 첫 월드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한 조던 몽고메리, 논텐더 방출 후 반등에 성공한 '왕년 MVP' 코디 벨린저, 최고의 지명타자인 J.D. 마르티네즈, 공수 겸장 3루수 맷 채프먼 등이 모두 보라스의 고객이었다.
지난해 호성적을 거둔 선수들이 대거 FA 시장에 나온 만큼 보라스는 이번 오프시즌에도 '돈 잔치'를 예상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달랐다. 시장은 보라스의 고객들에게 냉담했다. 특히 보라스가 자신에게 '돈 방석'을 선물해줄 것으로 기대한 '우수 고객'들일수록 외면을 받았다.
보라스는 11월 마에다 겐타(MIN), 닉 마르티네즈(CIN), 에릭 페디(CWS) 등에게 총액 3,000만 달러 미만의 2년 계약을 안겨줬다. 통상적으로 본격적인 대형 계약은 12월 윈터미팅이 지나야 이뤄지는 만큼 무난한 시작처럼 보였다.
12월 중순 KBO리그에서 포스팅을 신청한 이정후가 보라스의 손을 잡고 역대 아시아 야수 포스팅 최고액이자 역대 한국인 포스팅 최고액인 6년 1억1,300만 달러 규모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계약하며 보라스의 입꼬리는 점차 올라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정후 이후 보라스 코퍼레이션 소속 선수들의 대형 계약은 뚝 끊겼다. 스넬, 몽고메리, 벨린저, 채프먼의 '빅 4'는 물론 마르티네즈까지 좀처럼 행선지를 찾지 못했고 2월 중순이 도래해 스프링캠프의 문이 열렸다.
2월 말이 돼서야 벨린저가 원소속 구단인 시카고 컵스와 3년 8,000만 달러 계약을 맺었고 3월 첫 날 채프먼이 샌프란시스코와 3년 5,400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 3월 중순이 돼서야 스넬이 샌프란시스코와 2년 6,200만 달러 계약으로 행선지를 찾았고 마르티네즈가 뉴욕 메츠와 1년 1,200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3월 27일(한국시간) 몽고메리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와 1+1년 최대 5,000만 달러 계약에 합의하며 '보라스의 고객'들이 모두 소속팀을 찾게 됐다.
연평균 금액으로는 '대박'이라 할 수 있는 선수들이 있었지만 총액 기준으로는 이정후를 제외하면 누구도 1억 달러를 넘지 못했다. 사실상 이정후가 이번 오프시즌 '보라스 코퍼레이션' 최고의 아웃풋이었던 셈이다.
사실 보라스의 고객들이 2억 달러 이상 혹은 그에 육박하는 계약을 따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스넬은 비록 사이영상을 수상하기는 했지만 기복이 심한 투수다. 잘할 때는 굉장하지만 안정감을 주는 투수가 아닌 만큼 구단들 입장에서는 거액의 장기 계약을 안기기에는 부담스러웠다.
벨린저는 성적 반등을 이뤄냈지만 세부지표가 LA 다저스에서 MVP를 수상하던 당시와는 달라졌다. 더이상 공을 쪼갤듯한 스윙으로 엄청난 타구를 날리는 타자가 아니다. 타구 속도는 리그 최하위급으로 뚝 떨어졌고 예전의 장타력도 사라졌다. 지난해 성적이 '플루크'일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채프먼 역시 3루수로서 수비력이 뛰어나고 중장거리 타자로서의 가치도 있지만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MVP 후보에 오르던 때와는 거리가 생겼다. 정교함이 크게 떨어졌고 장타력도 당시에 비해 약해졌다. 몽고메리는 최근 2년 급격히 주목도가 올랐지만 안정적인 커리어를 쌓은 선수가 아니다.
벨린저를 제외한 세 명은 이미 30대에 접어든 선수들. 그리고 몽고메리를 제외한 세 명은 퀄리파잉오퍼를 거절한 선수들이기도 했다. 구단들 입장에서는 불안요소가 보이는 선수들에게 거액을 투자하며 드래프트 지명권까지 포기하는 위험을 감수하기 어려웠다. 지난시즌 카를로스 로돈(NYY)이라는 최악의 계약 사례를 똑똑히 지켜본 구단들은 더욱 보라스와 대형 계약을 철저하고 깐깐하게 들여다봤다.
여기에 보라스가 거액의 요구 조건을 좀처럼 굽히지 않은 것도 협상이 계속 결렬된 이유였다. 보라스는 캠프가 시작되고 3월에 접어든 후에도 협상에서 물러서지 않고 강경한 태도로 일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액 2억 달러에 육박하는 장기 계약을 기대했던 선수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벼랑 끝까지 몰린 후에야 결국 총액 1억 달러 미만의 1-3년 단기 계약을 맺을 수 밖에 없었다.
보라스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구겨졌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정후의 대박 계약을 이끌어냈지만 와서맨의 조엘 울프를 에이전트로 삼은 야마모토 요시노부는 역대 투수 FA 최고액인 3억2,500만 달러(12년)에 LA 다저스와 사인했다. 또 CAA 스포츠 소속인 오타니 쇼헤이는 다저스와 10년 7억 달러의 단일 계약 기준 역대 프로스포츠 최고액 계약을 맺었다.
에이전트는 결국 선수의 계약 규모로 말하는 것이다. 자신이 메이저리그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최고의 에이전트라고 생각하고 있는 보라스 입장에서는 자신이 해내지 못한 두 건의 '역대 최고액' 계약이 다른 에이전트들의 손에서 이뤄졌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을 수 있다. 그래서 더 대형 계약에 매달린 것이었을 수도 있다.
대규모 'FA 미아 사태'는 피했지만 보라스의 고객들은 대부분 만족스럽지 못한 계약을 맺었고 일부는 지난해 최고의 활약을 펼쳤음에도 다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까지 맞이했다. 계약이 늦어진 선수들은 스프링캠프를 처음부터 정상적으로 치른 선수들보다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어려운 상황. 이는 시즌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과연 실패로 끝난 '보라스의 겨울'이 올시즌 메이저리그를 어떻게 흔들지 주목된다.(자료사진=스캇 보라스)
뉴스엔 안형준 markaj@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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