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뇌진탕 후 증후군

남궁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2024. 3. 2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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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머리에 외상을 입었다는 그는 말짱한 걸음으로 걸어와 의자에 앉았다. 얼핏 보니 머리에 출혈이나 둔상 흔적은 없어 보였다.

“어떻게 오셨나요.” “제가 트럭 적재함에 올라가 작업하다가 바닥으로 넘어져 머리를 부딪혔다고 합니다. 지금은 머리가 띵 하고 아픕니다.” “어느 쪽을 부딪히셨는지요.” “그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솔직히 제가 머리를 부딪혔다는 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동료들이 깨진 헬멧을 보여줘서 다친 걸 알았습니다. 그대로 작업을 마쳤는데 다들 응급실에 가보라고 해서 왔습니다. 지금은 두통 말고 특별히 불편한 건 없습니다.”

그는 자기가 다쳤는데도 들은 사실처럼 표현하고 있었다. 나는 평상복 차림의 그를 검진했다. 촉진상 머리에 타박을 입은 듯한 부분은 없었다. 경추도 자유롭게 움직였고 손상을 의미하는 신경학적 징후도 없었다. 두통과 기억 상실 외에는 증상이 없는 환자였다. 헬멧을 써서 천만다행이었다. 헬멧은 충격을 분산해서 수많은 인명을 구한 최고 발명품이다. 검사에서 특별한 소견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뇌진탕 같습니다. 혹시 모르니 검사를 진행하겠습니다.” 곧 엑스레이와 CT 결과가 정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름을 부르자 그는 다시 반듯한 걸음으로 진료실 의자에 앉았다. 시종일관 정중한 태도였다. 큰 사고를 면한 그에게 공을 들여 설명했다.

“일단 엑스레이에서는 골절선이 보이지 않습니다. 정상이지요. 이제 CT를 열어보겠습니다. 여기 보이는 하얀 부분은 두개골이고 안쪽 회색 부분이 뇌입니다. 뇌출혈이 있다면 하얗게 표시되지만 그런 부분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역시 정상입니다.”

“괜찮다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뇌에도 타박상이 있습니다. 몸에 타박상을 입으면 욱신거리고 아프겠지요. 뇌도 타박을 입으면 두통이 나지만 구역질이나 기억 상실 등 다양한 증상이 따르기도 합니다. 의사들은 흔히 뇌진탕 후 증후군이라고 표현하지요. 다른 타박상처럼 뇌진탕도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회복됩니다.”

그는 진심으로 이해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이상이 없으면 집에 가겠습니다. 아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괜찮더라도 나중에 출혈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증상이 생기면 다시 내원하시고, 회복될 때까지는 안정하셔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들어올 때처럼 혼자 진료실을 나갔다. 몇 환자가 더 진료실에 들어왔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고 했다. 보호자 문의인데 아무래도 내가 진료한 환자 같다고 했다. 방금 머리를 다친 남자의 보호자였다.

“저희 남편이 응급실에 다녀온 것 같은데요. 설명을 전혀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냥 집에 가라고 했다는데요. 어떻게 된 일인지요?”

의아했다. 그는 분명히 설명을 잘 듣고 진료실을 나갔기 때문이다. 순간, 아뿔싸, 나는 상황을 이해했다. 그가 호소한 “기억이 없어요”는 현재 순간까지 포함되었던 것이다. 근본적으로 방금 진료는 환자의 기억에 입력되지 않을 시간이었다. 이상이 발견되었다면 보호자에게 연락했겠지만 그는 검사상 정상이었고 성인으로 사리 분별이 명확해 보였다. 나는 최대한 솔직하게 설명했다.

“제가 직접 설명드렸습니다. 머리를 다쳤는데 다행히 이상은 없습니다. 다만 기억 상실 증상이라 방문한 사실까지 잊으신 것 같습니다. 보호자께 유선상이라도 설명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하루 이틀 지켜보고 증상이 지속되면 다시 방문하세요. 괜찮아지실 겁니다.”

보호자는 잘 납득했다. 하지만 진료가 부족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환자에겐 ‘정상으로 보임’까지 일종의 증상일 수 있다. 진료실에서는 드문 가능성을 떠올리는 꼼꼼함과 만전을 기해 보호자에게도 연락하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15년을 일해도 계속 배운다. 이곳 일은 아무리 진중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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