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좋은 질문의 힘
멕시코의 테오티우아칸에는 거대한 고대 건축물인 ‘태양의 피라미드’가 있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는 두 개의 고인돌이 있었는데, 고대인들이 제례 의식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들여 운반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고인돌들은 현재 피라미드의 정상이 아닌,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뮤지엄에 전시돼 있다. 세계 각지의 수많은 박물관 소장품들처럼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약탈과 밀반입 등 복잡한 사연이 있을 것이다.
유물이 있어야 할 장소에 의문을 가진 한 예술가가 박물관에 편지를 쓴다. “유물의 외형뿐만 아니라 기능까지 보존하면 어떨까요? 혹시 원본이 안 된다면 제가 만든 복제품이라도 원래 자리에 되돌려 놓아도 될까요?”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2023′, 리움의 ‘국보’ 전시 등으로 국내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한국-콜롬비아계 작가 갈라 포라스-김이다.
그는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유물을 다루는 시선이 달라지는 점에 주목한다. 고인돌을 제자리에 되돌려 놓으려는 시도는 물론, 영국 박물관이 소장한 이집트의 5세기 석관을 고대 관습에 따라 동쪽을 향해 재배치하자는 편지를 쓰기도 한다. 유물의 본래 의도를 상기하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화해시키려는 시도다. 한편 리움의 전시에서는 남북한의 국보 530점을 한데 모아 그린 작품을 선보였는데, 남북의 국보를 번갈아 배치했다. ‘국보’라는 분류가 일제강점기 때 생겼고 해방 이후 남북한의 국보가 나뉘었다는 점을 떠올리며, 제도에 따라 달리 분류되는 유물의 운명을 생각해보게 된다.
유물과 사회, 제도가 맺는 관계에 대해 가벼운 농담처럼 질문하는 갈라 포라스-김의 작품들은 당연히 여기던 것들을 낯설게 만든다. 우리는 지금 서 있는 곳에서부터 시선을 재정비하고 다시 세상을 바라본다. ‘ΟΟ란 무엇인가’라는 되물음으로 한때 화제가 되었던 모 대학교수의 칼럼처럼, 당연한 것을 질문으로 낯설게 만들 때 변화가 시작된다. 이처럼 예술의 ‘낯설게 하기’는 우리를 더욱 좋은 질문으로 이끄는 시작점이다. 변화는 질문할수록 빠르게 오며, 우리 스스로 질문하는 주체가 될 때 그 변화를 손에 넣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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