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중세 고려의 질병과 의료
피지배층까지 적절한 치료…생명 우선한 선조 본받아야
정은정 부경역사연구소 연구원
현재 대한민국은 의료전쟁 중이다. 중앙정부는 의료 인프라의 지방 분산을 거시 목표로 두고 의사협의회는 의료시스템과 환경 보완을 촉구한다. 양측 실랑이의 피해는 국민 몫이다. 자비를 베푼 의료, 의료의 과밀을 해소한 정책은 이미 고려에서 추구됐다.
고려 의료체계는 동아시아 지식교류와 확산 과정에서 수립됐다. 고려의 의학책 ‘어의촬요’는 고종 13년(1226) 최종준이 왕실의 비밀처방을 2권으로 간행한 의서이다. ‘향약구급방’은 민간 의학서적으로 대장도감에서 간행했다. 이 책에는 총 52개 일상 질환이 수록돼 있다. 일상의 질병은 규범을 깨트리고 비상 상황을 만든다. 왕실 지배층을 괴롭힌 대표적 생활 질환은 풍질이다. 때문에 ‘어의촬요’에 풍문(중풍) 처방이 1/3을 차지할 정도로 많다. 풍질은 일반 백성에 비해 고기류를 접하기 쉬운 지배층의 식육 습관에서 비롯한다.
창종 같은 피부질환도 큰 문제였다. 창종은 화농성 질환이다. 페니실린 계열의 항생제가 보편화되기 전까지 창종은 흔한 질환이다. 실제 예종은 등창이 발병한 지 보름 만에 사망했다. 신종도 등창 후 18일 만에 죽는다. 이색 권근도 노년에 등창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다가 죽었다. 피부질환 중에는 옴도 있었다. 옴은 사람과 사람 사이, 침구를 통해 감염되는 것이라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일반 백성에게 더 자주 발생했다.
눈병은 고려 문인의 일상을 괴롭히는 질병이었다. 명종대 죽림칠현이던 오세재는 시야에 검은 꽃이 보인다는 의미의 ‘현화’ 시를 남겼다. 현화는 날파리가 떠다니는 것을 보는 듯한 비문증이다. 이규보 이색 원천석은 백내장을 앓았다. 백내장 치료제인 용뇌는 주로 남양군도와 인도에 자생해 일반인들은 도저히 구할 수 없는 약재이다. 7세기 초 당나라 의학서 ‘비급천금요방’에는 오래된 동전의 녹을 안약 재료로 사용했다. 눈병 치료는 ‘향약집성방’을 거쳐 ‘동의보감’에도 채록됐다. 치통은 죽고 싶을 정도로 심한 고통이 따른다. 충치는 쥐엄나무 버드나무를 이용한 양치법으로 다스렸다. 디스크(요통)는 뜨겁게 달군 기왓장을 얹거나 주무르기로 치료했다.
생활의 질병을 치유한 의료인은 의업 전문인(업의)이다. 업의는 치료 대가로 많은 액수를 지급받았다. 고려 사람들에게도 간병은 가족 몫이었다. 가족 돌봄과 의원 치료에도 결국 환자는 사망한다. 환자의 급한 죽음을 막고자 응급치료법도 생겨났다. 구급 환자가 생기면 손가락·넓적다리를 베어 피·살·뼈를 환자에게 먹이는 인육 치료법이 유행했다. 비싼 약재 처방이나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지배층이었다. 중앙 정부는 일반 백성이 진료에서 배제되지 않게끔 애썼다. 국초부터 공공의료와 민간구료·군의관을 지방거점 도시에 고르게 안배했다. 태조 17년(934) 운주싸움에서 패배한 후백제 군대의 의사 훈겸은 군의관으로 활약하다가 태조에게 생포된 듯하다. 인종대에는 각 군대에 용약원(약사)을 두었다. 충렬왕대 사병관이라는 군의관이 있었다.
고려 의료체계의 핵심은 관료제하에서 의료를 시행하는 것이다. 태의감·상약국은 국립의료기관 격이었다. 지방 의료 체계도 국초부터 갖춰져, 각 군현마다 의사를 두었다. 치료를 못 받아 요절하는 백성이 없도록 한 국가적 배려였다. 태조 13년 서경에 의업 교육기관을 둔다. 성종은 지방 학생을 뽑아 개경에서 유학과 의학을 가르쳤다. 현종 9년 인구의 대소에 따라 1~4명의 약점사를 두었다. 주요 행정거점에 배치된 의사와 약점사를 통해 지역별로 적절한 수준의 진료가 이뤄졌다.
몇몇 지역 거점에 설치한 의료시설로는 전체 고려 백성에게 고른 혜택을 줄 수 없었다. 의료 공백은 민간 의료나 구료시설에서 보완했다. 백성 대상의 구료는 구제나 존휼적 성격을 띠어 동서대비원·제위보·의창과 유기적으로 연결됐다. 지배층은 의학서적을 읽어 자신이 채득한 의료 기술로 아픈 사람을 치료해 주었다. 고려말 김해에 살던 배덕표는 조제한 약재를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었다. 허금·채홍철도 사비를 털어 약재를 무상으로 나눠주었다. 고려의 모든 의료인은 인정과 자비를 베풀어 사람을 살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국가에서 제시한 의료 수혜층은 신분을 불문하고 고려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었다. 동물도 의료 수혜 대상이었다.
정부와 의료인 각자의 입장이 팽팽히 충돌하는 현장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다. 의약에 앞서 인정이 우선이라 한 고려 의업인의 말이 귀에 맴돈다. 타협하려 애쓴 고려 중앙정부의 포용력도 되새겨야 할 것이다. 그 무엇에 앞서 사람이 먼저이다.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체계나 지역의료체계의 수립은 절실하다. 양측 모두 ‘사람이 먼저’라는 하나의 지점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 믿고 싶다. 하루라도 빨리 의료시스템이 정상화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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