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영화의 타자들로부터 우리의 타자들에게로
현대사회를 대표하는 위기 중 하나가 난민(難民·refugee) 문제다. 세계 각국이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노력 중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1992년 12월 난민의정서에 가입했으며 1994년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해 난민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난민이라는 신분 혹은 정체성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인종, 종교, 정치 등의 박해를 피해 다른 나라로 이동하면서 획득된다. 취업, 교육, 가족 등의 이유로 더 나은 삶을 영위하고자 자국을 떠나는 이주민(migrants)과는 다르다.
난민을 소재로 제작된 영화들이 많다. 수잔 비에르 감독의 영화 ‘인 어 베러 월드(In a better world·2010년)’는 덴마크와 아프리카를 오가며 의료봉사를 하는 안톤과 그의 타자들이 겪는 갈등과 화해를 다룬다. 안톤의 타자들로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아내 마리안느, 아들 엘리아스와 그의 친구 크리스티안, 그리고 아프리카의 난민들과 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반군지도자다.
주인공 안톤은 이해 불가할 정도로 넓은 포용력과 일방적인 사랑을 실천한다. 그는 폭력을 행사하는 낯선 타자에게 저항하지 않으며, 폭탄 실험으로 아들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 크리스티안을 용서로 품어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난민들을 잔인하게 폭행하던 반군지도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심각한 부상을 당한 반군지도자에게 안톤은 그야말로 구원자인 셈이다. 결국 의사라는 직업적 소명하에 반군지도자를 환자로 바라보고, 비윤리적 행위를 수도 없이 감행한 그를 치료하기로 결심한다. 반군지도자에 대한 안톤의 행위는 일견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주변인들은 그가 회복되면 다시 학살이나 폭행을 일삼을 것을 알기에 치료해 주는 것을 반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군지도자를 구해주는 것이 바람직한가? 관객은 안톤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윤리적 딜레마에 봉착한다.
이처럼 ‘인 어 베러 월드’는 모든 타자에 대한 인간의 초월적 사랑을 다루는 영화적 실험과도 같다. 타자들의 영화로 이 작품을 소환하는 이유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전쟁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난민들,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한 우리의 임무 혹은 책임을 성찰하기 위함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소외된 타자들은 일상 가운데 불현듯 나타나는 고통받는 얼굴의 타자들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매일 어떤 타자들과 조우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이 내게 타자이듯 나도 그들에게 타자다. 그래서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하다. 이는 나 자신이 환대받는 타자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과 나 모두는 언제나 서로를 환대해야 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내 앞에 우연히 나타난 타자들이건, 보이지 않는 동시대의 수많은 고통받는 타자들이건, 영화 속 타자들을 통해 다시 한번 나의 타자들에게 시선을 돌리는 나날이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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