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일로 와” 불심검문·체포…총선 후보의 이주노동자 ‘몰이’
인권침해에 불법 소지도 커…전문가들 “권한 없는 활동”
이주민단체 “혐오 정서 확산 안 돼”…경찰은 수사 착수
한 국회의원 선거 출마자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강압적으로 붙잡아 경찰에 넘기는 등 ‘사적 체포’ 우려가 큰 활동을 벌이자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이주인권단체들은 현행범 체포라 하더라도 민간인이 법적 요건을 갖추지 않고 체포에 나서면 불법체포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강압적인 체포 과정서 인권침해가 자행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27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경북 경주경찰서와 대구 북부경찰서 등은 ‘박진재 자유통일당 국회의원 후보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사적으로 불법체포하고 있다’는 고발을 다수 접수하고 박 후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현장 영상과 당사자·고발인 진술 등을 통해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혐의를 들여다보고 있다.
자신이 이끄는 단체 회원들 대동
자유통일당 소속인 박 후보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북갑 선거구에 출마했다. 자유통일당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축이 돼 결성한 극우 성향 정당이다.
박 후보는 자신이 이끄는 시민단체 ‘자국민보호연대’ 회원들과 함께 전국 각지를 돌며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붙잡거나 이동을 막은 뒤 경찰에 넘기고 있다. 길을 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불러세워 억류하거나 거주지·사업장을 찾아가 붙잡는 방식이다. ‘무면허 오토바이’ 등을 사유로 신고한 뒤 체류자격을 확인하게 하는 경우도 잦다. 이들은 이 과정을 영상으로 촬영해 유튜브·틱톡에 업로드한다.
체포는 강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박 후보가 올린 한 영상을 보면 박 후보 등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이주노동자들을 막은 채 “야 일로 와, 일로 와”라며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고 인도에 강제로 앉힌다. 자국민보호연대 회원들은 이주노동자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주변을 둘러싸고 목덜미나 어깨를 잡아 누르고 있다.
또 다른 영상에서 이들은 이주노동자를 바닥에 눕힌 채 가슴께를 누르며 “솔직하게 얘기하면 봐줄게” “비자 없잖아, 우리가 확인했어”라고 말한다. 이주노동자는 “전 비자 없어요”라고 답한다. 이들은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이주노동자를 강제로 붙잡고 있었다.
박 후보는 체포 활동이 불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박 후보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현행범은 누구나 체포할 수 있다고 법에 나와 있고, 불법체류자들은 불법을 저지르는 현행범”이라며 “번호판도 없고 면허증도 없지 않나. 불법체포감금의 요건이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저희는 경찰과 항상 같이 활동하기 때문에 무단으로 폭행하거나 하지 않는다”며 “(경찰은) 우리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했다.
이주인권단체들과 법조계는 민간인인 박 후보의 행위는 불법체포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고 지적한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현행범 체포는 행위의 수단·방법의 상당성, 긴급성, 범죄의 명백성,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등 요건을 채워야 한다. 범죄가 명백하고 다른 수단이 없을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현행범 체포가 허용된다는 것이다.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이들은 이주노동자가 미등록인지 아닌지 알고서 검문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신분증을 수색하거나 불심검문하는 것은 경찰에게만 허용되는데, (이들에게) 그런 권한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현행범 체포도 무조건 다 되는 게 아니라 범죄의 명백성과 긴급성 등이 전제돼야 한다”며 “이 사안에서 이들은 현행범 체포의 요건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행정 법규 어긴 게 현행범은 아냐”
형사범죄자가 아닌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 변호사는 “출입국관리법 위반 사범임이 명백해 보인다 하더라도, 출입국관리법 위반은 행정법규를 어긴 것이지 형사범죄가 아니다”라며 “그런 이들을 개인이 강제력을 동원해 체포하면 형법상 정당행위의 요건 중 ‘보호법익과 침해법익의 균형성’ 문제가 발생한다”고 했다. 행정범을 강제체포해 보호할 수 있는 법익보다 침해되는 법익이 더 크다면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찰이 직접 박 후보의 체포 활동이 불법이라고 지적한 일도 있었다. 박 후보가 지난 2월 틱톡에 올린 영상을 보면, 박 후보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은 “법 위반이 있으면 신고를 해야지 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느냐. 당신이 무슨 사법권이 있느냐”고 했다. 박 후보가 “현행범은 누구나 체포할 수 있다”고 하자 경찰관은 “그 현행범은 형사범을 얘기한다. 이 경우는 행정범”이라며 “당신의 행위는 불법체포감금이다. 외국인은 인권이 없느냐”고 했다.
박 후보는 영상 촬영자를 보면서 “찍어, 찍어, 그대로 올릴 거야”라며 “경찰은 제가 잡은 불법체류자들을 수수방관했다. 법이 우선이지 인권이 우선이 아니다”라고 고함을 쳤다.
지역사회 뒤숭숭…“제대로 수사를”
이주인권단체들은 이주민 혐오 정서에 기반한 ‘사적 제재’가 확산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7월 경기 포천에서는 10대 청소년 4명이 한 이주노동자를 “불법체류자로 신고하겠다”며 집단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대구서도 최근 이주노동자들이 자주 찾는 식당·공장 등에 대해 ‘도박을 한다’ ‘마약을 한다’ 등 허위신고를 하는 사례, 신고를 빌미로 돈을 뜯는 범죄가 잇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의 극우 자국민 우월주의자들인 ‘스킨헤드’가 연상된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인권단체들은 지역 산업계도 타격을 입고 있다고 전했다. 지역 공단은 일손 부족으로 이미 이주노동자 없이는 사업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인데, 무차별적 체포로 일할 사람이 더 줄고 있다는 것이다.
김희정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구지부 성서공단지역지회장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그냥 체류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은 이들이 없으면 안 된다”며 “사업주들도 ‘(박 후보를 막기 위해) 같이 뭐라도 하겠다’고 연락해온다”고 했다. 김 지회장은 “민간인이 이주노동자를 함부로 폭력적으로 연행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이미 유사 범죄자도 생기는 등 지역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만큼 (수사기관이) 제대로 수사해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정부의 자세도 달라져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 변호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계속 늘어나는 건 정부의 정책 실패”라며 “대책을 마련해야 할 정부가 오로지 미등록 노동자를 잡는 것에만 집중하기에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사태”라고 했다. 그는 “이러다가 포상금 걸고 마구잡이로 사람을 잡는 반문명국가로 전락할까 심히 염려된다”고 말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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