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도 안 옮기고 사전 청약...신혼부부 1000쌍 울린 LH
전세금 빼고 기다리다 날벼락
경기도 군포시 ‘신혼희망타운’ 사전 청약에 당첨된 신혼부부 약 1000쌍은 최근 다음 달로 예정된 본청약이 2027년으로 3년 미뤄진다는 통보를 받았다. 젊은 층의 ‘패닉 바잉’ 열풍으로 수도권 아파트 값이 무섭게 치솟던 2021년 사전 청약에 당첨, ‘몇 년만 기다리면 내 집에서 산다’며 안심했던 신혼부부들은 본청약을 불과 2주일 앞두고 날벼락을 맞았다. 한 사전 청약 당첨자는 “다음 달 계약금을 내려고 전세 보증금을 빼고 오피스텔 월세로 이사했는데 본청약이 3년이나 밀리다니 피해가 크다”고 말했다. 본청약 일정이 꼬이면서 입주 시점도 늦춰질 가능성이 커 신혼부부들의 내 집 마련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사전 청약은 통상 아파트 착공 즈음에 진행하는 청약 접수를 1~2년 정도 앞당겨 하는 것으로 당첨자는 본청약 때 먼저 계약할 기회를 받는다. 그러나 주택 조기 공급을 통한 부동산 시장 안정이라는 도입 취지와 달리 무리한 사전 청약 실시로 본청약이 파행을 빚으면서 무주택 서민들만 피해를 본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사전 청약 가구 중 절반 이상이 예정된 일정에 본청약을 진행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계약하려고 전세금 뺐는데…” 청약 연기 ‘날벼락’
27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따르면, LH는 최근 경기도 군포대야미 A2 블록 신혼희망타운 사전 청약 당첨자들에게 4월 진행하려던 본청약이 2027년 상반기로 미뤄진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발송했다. 아파트가 들어설 부지에 345kV(킬로볼트) 특고압 전력선이 지나는 송전탑이 있는데, 송전선로를 땅에 묻거나 다른 부지로 옮기는 공사에 3년 이상이 걸린다는 이유였다. 해당 단지는 신혼부부 특화형 공공주택으로 총 1511가구 중 952가구를 대상으로 2021년 10월 사전 청약을 받았다.
문제는 이런 연기 통보가 본청약 불과 2주 전에 이뤄진 것이다. 한 사전 청약 당첨자는 “계약금을 마련하려고 최근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을 받았는데 날벼락을 맞았다”고 했다. 다른 신혼부부는 “송전선로 문제가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닌데 사전에 지연 가능성을 알리지 않은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LH는 “송전선로를 옮기는 과정에서 한국전력과 이견이 생겨 공사가 지연됐다”며 “공사 기간을 단축해 청약 당첨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사전 청약은 2009년 보금자리주택에 처음 도입됐다가 흥행에 실패해 폐기됐다. 사전 청약 이후 토지 보상 등에 시간이 걸리고, 아파트 건설이 하염없이 미뤄지면서 사전 청약 당첨을 포기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서울과 수도권에 주택 공급 ‘시그널’을 보내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며 2020년 ‘8·4 부동산 대책’을 통해 사전 청약을 다시 도입했다. 당시에도 단기간에 주택 공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민심 달래기용 ‘미봉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로 주민 보상이나 기반 시설 협의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사전 청약을 시행한 탓에 본청약이 줄줄이 밀리는 단지가 계속 나오고 있다.
◇사전 청약 가구 절반 이상이 본청약 ‘연기’
2021년 사전 청약 후 올해 1월까지 본청약 일정이 도래한 27개 단지 1만4009가구 중 절반이 넘는 15개 단지 7398가구의 본청약이 애초 예정보다 연기됐다. 1026가구 규모의 성남복정2 A1은 작년 5월 본청약이 실시돼야 했으나, 기존 주민들이 이주를 반대하고 보상을 거부해 2026년 7월로 본청약이 밀렸다. 2000여 가구 입주가 예정된 남양주진접2 4개 지구는 문화재 발굴 조사를 이유로, 의왕월암 A1·A3(1316가구)는 부지에서 법정 보호종인 맹꽁이가 발견되면서 본청약이 미뤄졌다.
본청약 일정에 맞춰 자금 마련 및 이사 계획을 세웠던 사전 청약 당첨자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전 청약 당첨자는 법적으로 계약을 체결한 게 아니라 ‘예약’을 한 상태여서 손해를 구제받을 방법도 없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시장 안정이라는 제도 취지를 달성하지 못하고 무주택 실수요자들에게 ‘희망 고문’만 하고 있다”며 “사전 청약 제도를 계속 유지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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