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동의 강간죄 공약’ 착오로 넣었다는 민주당
민주 “당론 확정 안 돼…공약 포함은 실무착오”
더불어민주당이 4·10 총선 10대 공약에 ‘비동의 강간죄(간음죄) 도입’을 포함시켰다가 27일 “실무적 착오로 공약에 포함된 것”이라고 철회했다. 전날 국민의힘이 “억울한 사람이 양산될 수 있다”며 공세에 나선 지 하루 만이다. 폭행·협박이 없는 상황에서의 성폭행 범죄가 끊이지 않는 현실을 두고도 여당이 시대착오적 ‘갈라치기’에 나서는 상황에서, 제1야당마저 전세계적 인권 흐름에 역행하고 있단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은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공지에서 “비동의 간음죄는 공약 준비 과정에서 검토됐으나 장기 과제로 추진하되 당론으로 확정하지는 않았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된 정책공약에 비동의 간음죄가 포함된 것은 실무적 착오”라고 밝혔다. 김민석 당 선거대책위원회 상황실장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비동의 간음죄는 토론 과정에서 논의 테이블에는 올라왔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당내에도 이견이 상당히 존재하고 진보개혁 진영, 법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어서 공약까지 하기엔 무리가 아니냐고 했는데, 실무적으로 취합하고 검토하는 단계에서 착오로 포함된 게 확인됐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관위에 △형법 297조 강간죄 구성요건 개정 △데이트 폭력 범죄 법제화 및 피해자 보호 체계 강화 △스토킹 범죄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 대처 및 보호 강화 등을 공약으로 제출한 상태였다.
비동의 강간죄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형법 297조 강간죄의 기본 요건인 ‘폭행 또는 협박’을 ‘동의 여부’로 대체하는 뜻이다. 여성단체들은 저항이 불가능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없는 상황에서도 다수의 강간 범죄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들어 이런 내용의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요구해왔다. 유엔(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2018년 3월 ‘형법 제297조를 개정해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강간을 정의해야 한다’고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이에 민주당은 2020년 총선 때 ‘비동의 강간죄 도입 검토’를 공약했지만, 이와 관련한 별다른 활동 없이 21대 국회 임기 만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민주당이 이날 ‘실무 착오’라며 비동의 강간죄 도입 가능성을 일축한 건, 여기에 반대하는 일부 남성 유권자들의 반발을 의식한 탓으로 풀이된다. 최근 몇 년 사이 젠더 갈등이 더욱 격화한 가운데, 남성 청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비동의 강간죄가 도입되면 이를 악용하는 여성들 때문에 무고한 남성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주장이 확산하곤 했다.
전날인 26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울산에서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제출한 비동의 강간죄 도입 공약을 먼저 언급하며 “피해자가 내심으로 동의했는지를 가지고 범죄 여부를 결정하면 입증 책임이 검사가 아닌 혐의자에게 있게 된다. 억울한 사람이 양산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는 이런 여론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한 위원장은 법무부 장관이던 지난해에도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여성가족부를 가로막은 바 있다. 천하람 개혁신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도 27일 선대위 회의에서 “수많은 국민이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성범죄로 수사받고 인생이 송두리째 위협받는 심각한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안팎에선 ‘여당이 반인권적인 공세에 나서는데도 민주당이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의 한 여성 의원은 “국민의힘이 여성 지우기를 하고 있는데, 민주당도 아무런 브레이크 없이 나아가고 있는 것”이라며 “22대 국회에서 노골적인 백래시(반발)가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박지아 녹색정의당 선대위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총선 시기에 갑작스러운 한동훈 위원장의 비동의 간음죄 반대 발언은 여성과 인권에 반하고 국제적 인권 흐름에 역행하고, 선거를 위해 갈라치기 정치를 이용하겠다는 조급한 선언”이라며 “지난 대선에서 보였던 국민의힘의 성별 갈라치기 정치와 이에 휘말렸던 민주당의 우왕좌왕 행보가 재연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거대 양당 어디에도 여성은 없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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