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도 현수막 쓰레기산을 예고한다 [왜냐면]

한겨레 2024. 3. 2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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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2일 서울 은평구의 한 집하장에서 은평구청 직원들이 철거한 전국동시지방선거 출마 후보자들의 현수막을 트럭에서 내리고 있다. 이 선거에 게시된 현수막은 12만8천여 장, 길이로는 1281㎞에 달했다. 연합뉴스

허승은 |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

현수막만큼 홍보 효과가 확실한 게 없다. 우리 동네 A정당 당협위원장을 알게 된 것은 현수막 덕분이다. 심지어 우리 동네 초등학생도 그 당협위원장을 안다고 한다. 게시 일자가 끝나기 무섭게 현수막을 끊임없이 걸었는데 어떤 때는 삼거리에 당협위원장의 얼굴과 이름이 박힌 현수막이 4개나 걸리기도 했다. 반복적인 노출이 주는 홍보 효과는 확실했다. 현수막 몇 장으로 이 정도 홍보라면 성공이다.

그러나 정치권의 바람과는 달리 효과가 지속되지는 못했다. 지난해 3월 정당의 정책 홍보 현수막을 제한 없이 게시할 수 있도록 하자 현수막으로 인한 민원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거리 곳곳에 게시된 정당 현수막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지고 안전문제까지 불거지자 정치권은 법을 개정해 수량을 제한했다. 홍보차 내건 현수막이 반감을 사게 되니 정치권은 빠르게 움직였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다시 현수막이 쏟아진다. 그러나 이번엔 문제가 불거져도 쉽게 개선되기 어려울지 모른다. 선거운동 기간인 2주 동안만 버티면 되기 때문이다. 뒤돌아서면 버려지는 후보자의 명함, 보지도 않고 봉투째 버려진 공보물, 거리에 난립하는 현수막, 선거철에만 입고 버려지는 옷과 어깨띠 등 선거철에는 쓰레기가 넘쳐나도 개선되지 않은 채 30년간 지속되고 있다. 선거운동 기간에는 쓰레기 문제도 관심을 얻지만,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선거 직전에는 선거 운동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현수막 사용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왔다. 2005년 후보자의 선거사무소 현수막 규격 제한을 없애고, 2010년에는 선거사무소 현수막 수량 제한을 없앴다. 그래서 건물을 뒤덮는 대형 현수막 사용이 가능해졌다. 2018년에는 게시 가능한 후보자의 현수막 매수를 2배로 늘렸다. 그 결과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용된 현수막이 1만3980매(2016년)에서 3만580매(2020년)로 급증했다. 쓰레기대란이 일어나던 시기에도 정치권의 현수막 사랑에는 변함이 없었다. 선거가 끝난 후에도 당선자, 낙선자는 현수막으로 답례 인사를 할 수 있다. 이는 모두 공직선거법에서 허용한 후보자의 선거운동 방법이다. 어떤 후보자도 환경을 위한다는 명분만으로 현수막 사용을 줄일 이유는 없다.

환경오염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제안되는 것은 현수막 재활용이다. 2020년 국회의원 선거의 폐현수막 재활용은 23.5%에 불과했다. 2022년 대통령선거 이후 행안부는 폐현수막 재활용 지원 사업으로 지자체 22곳에 1억5천만원을 지원했다. 절반 이상이 장바구니와 청소 마대자루를 만드는 사업이었고 심지어 시멘트 소성용 연료 활용 사업도 포함되었다. 후보자 얼굴이 들어간 부분은 청소 마대자루로 만들기 어렵고, 재활용품으로 만든 장바구니는 원하는 사람이 없다. 재활용으로 포장된 다른 형태의 쓰레기일 뿐이다. 행안부와 환경부가 나서서 현수막 재활용 사업을 권장하는 것은 그린워싱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권과 현수막은 필수불가결한 것일까. 한때 선거에서 현수막 사용을 폐지한 적이 있었다. 때는 제2회 지방선거가 열린 1998년. 우리나라가 IMF 외환 위기를 겪던 시기다. 온 국민이 금 모으기를 할 때니 선거 또한 돈이 적게 드는 선거에 대해 국민의 기대가 높아졌다. 국회는 법을 개정해 명함형 소형 인쇄물과 현수막을 이용한 선거운동을 금지했다. 그러나 4년 후 3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현수막은 선거운동에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기후위기 시대, 쓰레기로 남는 선거운동 방법은 개선되어야 한다. 21대 국회는 선거 홍보물 저감 관련 개정안을 총 9건 발의했다. 그중 3건이 전자 공보물로의 전환을, 나머지는 선거 홍보물의 친환경 소재 사용이나 현수막 재활용에 대한 내용이다. 그러나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홍보물 저감을 위한 노력은 국회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22대 국회에서는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선거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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