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 해법이 상속세 깎아주기? [왜냐면]

한겨레 2024. 3. 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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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1회 상공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재벌기업 총수들과 함께 오프닝 영상을 시청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유찬 | 포용재정포럼 회장·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윤석열 대통령이 가업상속공제제도 적용 대상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했다. 우리나라 많은 기업이 상속세 신경 쓰느라 기업 밸류업에 나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독일은 기업규모와 관계없이 가업상속공제를 적용해 최대 100%까지 감면한다’며 우리나라 지배주주들의 고민을 상속세 완화로 풀어주겠다는 취지도 밝혔다. 가업상속공제 대상은 현재 연 매출 5천억원 이하 기업이나 그간 기획재정부는 적용 대상을 1조원 수준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윤 대통령은 그 범위를 더 확대하겠다는 뜻이다.

가업상속공제의 확대는 한국의 기업 소유주(오너)들이 집중하고 있는 대정부 로비항목이다. 이들은 낮은 수준의 법인세 실효세율의 혜택으로 내부에 유보하고 있던 기업소득을 자식 세대에게 온전하게 물려주고 싶어하는데, 그 과정에서 상속세가 부담된다는 것이다. 기업의 부는 오너 혼자서 일군 것이 아니다. 사회와 국가가 그리고 근로자가 같이 만들어낸 것이고 상속세를 통하여 그 몫을 같이 나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은 많은 기업이 상속세 부담 때문에 기업 밸류업에 나서지 못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 기업이 얼마나 될까. 기업이 상속세 부담을 줄이려 인위적으로 가치가 저평가되도록 하고 있다면 탈세는 아니라도 조세회피를 하는 셈이다. 실정법을 유린하는 이런 행위를 대통령은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인가?

저평가, 즉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적 원인은 지배주주가 소액주주 등 모든 주주에게 돌아가는 배당을 아깝게 여겨 본인이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기업 내부에 유보금으로 묶어두기를 선호하기에 생긴 저배당 성향과, 지배주주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합병 및 인적분할 전략 탓에 소액주주들이 입는 피해 때문에 생긴다. 대통령이 말하는 정책이 팩트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면 단순히 민망함을 넘어 의도하는 정책목표를 이룰 수가 없다. 특히 감세 정책인 경우 국가의 재정적 어려움마저 가중시킨다.

가업상속공제는 조세공평성이라는 보편적 원칙을 훼손하는 매우 예외적인 제도다. 가업의 원활한 승계를 지원해 고용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는 사회적 필요성 때문에 만든 예외다. 따라서 도입 목적에 부합하는 대상에 엄격하게 국한해 세제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가업상속공제의 혜택을 받으려면 대상 기업이 일반적인 기업이 아니라 ‘가업’이어야 한다. 가업은 가족에게 승계되지 않으면 기업 경쟁력 유지가 어려운 소규모 기업을 말한다. 또 상속인에게 기업의 지분 이외에 다른 자산이 없거나 모자라 상속세를 부담할 능력이 없어야 한다. 만약 다른 금융자산, 부동산 자산 등을 매각해 상속세를 납부할 여력이 있는 경우 공제를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가업을 승계한 이후 상속인은 일정 기간 최소한 가업 승계 이전과 동일한 또는 그 이상의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독일에서는 왜 이 제도가 필요했고 우리 상황과 무엇이 같고 다른지 살펴보자. 독일에는 국제경쟁력을 가진 히든 챔피언들이 많다. 그들 중 다수 기업이 수 세대에 걸친 가업으로 영위되는 비상장기업이다. 자본시장에서 자금조달을 하지 않고, 획득한 수익을 지속해서 기술개발에 재투자했기 때문에 자본규모가 작다. 이 때문에 상속세 부담은 실존적이며, 종사하는 숙련노동인구들의 고용도 위태롭게 한다. 가업상속공제를 바라고 있는 우리 기업들이 과연 독일과 같은 처지의 가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가족에게 승계되지 않으면 경쟁력 유지가 어려운 소규모 기업들인가?

기업자산이 일정 규모를 넘어서고, 특히 자본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하는 상장기업이라면 기업상속공제를 제공할 이유가 거의 소멸된다. 그러기에 독일에서는 가업상속공제 적용대상 기업의 자산규모를 일차적으로는 2600만유로(약 400억원)로 설정했다. 자산규모가 그 이상이 되면, 두 가지 모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상속인의 신청에 따라 과세당국이 상속세 납부능력을 조사한다. 상속인은 자산공제대상 상속자산에 대한 상속세를 가용자산으로 지불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직접 증명해야 한다. 상속인의 가용자산은 공제대상 상속자산 외 상속자산의 50%와 상속세 발생 시점에 상속인에게 속하는 모든 자산을 포함한다. 과세당국의 조사결과 상속공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더라도 가용자산으로 지불이 불가능한 부분에만 상속세를 경감해준다. 두 번째는 이러한 조사를 생략하되 2600만유로를 넘어서는 자산가액이 매 75만유로를 넘어설 때마다 공제되는 상속자산을 1%씩 경감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상속되는 기업의 자산가치가 9000만유로(약 1100억원)를 넘어서면 상속인은 공제를 받을 수 없다. 적어도 이 정도의 제도적 검증장치는 두어야 조세공평성에 위배되더라도 예외를 적용할 명분이 서는 것이다. 규모가 큰 기업은 소유자 가족이 아닌 전문경영인이 운영해도 기업이 경쟁력을 잃을 까닭이 없다.

윤 대통령은 가업상속공제 허용의 매출액 기준 5천억원을 1조원보다도 더 높은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것인데 이는 거꾸로 가는 것이다. 우리보다 경제 수준이 높은 독일과 수평 비교하더라도 이미 공제대상 기업의 자산 규모가 지나치게 높다. 사후관리 요건도 7년에서 5년으로 이미 단축했는데 이는 고용유지를 조건으로 허용하는 가업상속공제의 기본취지를 무력화시키는 조처이다. 5년은 매우 짧은 기간으로 이 기간만 고용을 유지하는 시늉만 하면 그 뒤 무슨 짓을 해도 가업상속공제의 혜택은 상속인에게 돌아간다.

가업상속공제는 기업의 고유한 생산적 경제활동에 필수적인 자산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상속인이 다른 금융·부동산 자산으로 상속세를 납부할 능력이 있는지 확인하고 다른 자산이 없는 경우에만 적용해야 한다. 제도에 이러한 조건이나 심사 규정이 없으니 현재의 우리 제도는 위헌적이다. 상속증여세는 경제의 ‘세습자본주의화’를 방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제도 중 하나이다. 경제적 효용이 증명되지 않았고 그 혜택이 일부 특권층에게만 귀속되는 가업상속공제제도는 폐지하거나 그 요건을 대폭 강화해 가업상속공제의 원래 취지에 부합되는 경우로 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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