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칼럼] ‘한동훈 정치’의 네 장면
4·10 총선을 100여일 앞두고 한동훈 법무장관이 집권여당 구원투수로 왔을 때, 앞에는 두 가지 숙명이 놓여 있었다. 윤석열 정권 ‘호위무사’라는 과제와 ‘한동훈 정치’를 여는 욕망이다. 후자는 잠룡 증명이라 하겠다. 모두 총선 승리와 불가분이지만, 색깔은 달랐다. 윤석열 대통령에겐 여의도의 친윤 객토라는 ‘+α’가 승리만큼 절실했다. 윤석열의 승리여야 했기 때문이다. 호위무사는 어디까지나 대리인으로 끝나야 했다.
첫 착점은 유려하고 똑똑했다. 한 비상대책위원장은 유권자를 향해 “동료 시민”이라 했고,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국민의힘 인사들의 낡은 상상에선 결코 나올 수 없는 단어였고, 저작권을 독점한 듯했던 더불어민주당으로선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불출마는 정치 욕심을 내려놓은 희생 이미지와 함께 질투심 강한 현실 권력의 의심을 피하는 대리인의 알리바이를 제공했다.
“싸울 때 돋보이는 정치인이다”(여권 관계자). 보수가 환호할 만했다. 과거 유시민·이해찬 등 실력·팬덤을 갖춘 야권의 유능한 ‘쌈꾼’들에게 판판이 깨질 때 울분을 토하던 그들 입장에선 전에 없던 예리한 보검을 하나 얻은 격이었다. 한동훈 정치의 첫 장면이다.
운명의 시험이 그리 간단할 리 없다. 두 번째 장면이다. 1월23일 눈을 맞으며 30분을 기다린 한 위원장은 90도 폴더 인사로 윤 대통령을 맞았다. 대통령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이틀 전 윤 대통령은 밀사를 보내 그에게 “나가라” 했다. 한 위원장은 그 사실을 민심에 고자질하듯 선제 공개했다.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가 불러온 사달이었다. 십수년 관계가 한 달 남짓 만에 끝장날 것 같았다. 그래서 “약속대련”이란 말도 나왔다. 실상 두 권력의 충돌은 늘 약속대련일 수밖에 없다. 적어도 총선까지는 그렇게 포장되어야 했다.
총선을 20여일 남기고 다시 마주 섰다. 한 위원장은 대통령실을 향해 ‘황상무 시민사회수석 사퇴, 이종섭 호주대사 조기 귀국’을 요구했다. 친윤들조차 그의 손을 들었다. 대통령실은 당황했다. 사흘 만에 나온 새벽 황 수석 경질 공지에선 복잡한 감정이 읽혔다. 당혹과 굴욕감이다. 하지만 ‘런종섭 반란’을 문제 삼을 힘은 없어 보였다. 용산 주변에선 ‘배반’이란 단어가 떠돈다. 하지만 권력이 바르고 강인하면 배반이 머리를 내밀 틈이 없다.
세 번째 장면은 가장 의문으로 남은 한동훈 정치의 내용이다. 한 위원장은 19일 중앙선대위 발대식에서 “지면 종북세력이 나라의 진정한 주류를 장악하게 되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여의도 문법을 조소했지만 정작 총선 전략은 ‘색깔’이었다. 어떤 면에서 한동훈 정치는 기존보다 더 ‘여의도’스러웠다.
“제가 김건희 여사 사과를 얘기한 적이 있던가요.” 한 위원장은 주로 되물었다. 기승전 ‘이재명은요’ ‘더불어민주당은요’ 식이었다. 남을 걸어 자신을 지켰다. 곤란한 현안엔 “우리 당 입장은 명확하다”는 식으로 피해갔다. 짧고 명쾌한 듯했지만, 자세히 보면 법정에서 방어하듯 교묘하게 골대를 옮겨놓는 것에 불과했다. 26일엔 자신이 6년 전 30년형을 구형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도 찾아갔다. “좋은 말씀을 들었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어렵사리 건넜던 탄핵의 강을 그렇게 되건넜다. 같은 날 유승민 전 의원의 총선 역할론에 대해선 “특별히 생각해본 적 없다”고 잘랐다.
마지막 장면은 미래형이다. 운명의 정점은 총선 후가 될 것이다. 보수는 ‘윤석열의 실패’를 받아들이는 듯하다. 총선 패배를 윤석열의 실패로 매김하지, 한동훈 정치에 부채를 넘길 생각은 없어 보인다. 2년간 쌓인 실정의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혹 이긴다면 호위무사만 하고 홀홀히 떠나는 애초 약속대련의 해피엔딩 시나리오는 더 어려울 게다. 설령 그런다 해도 바람이 그냥 두지 않는다.
하지만 집이 허물어졌는데 서까래라고 온전할까. 한때 반짝하던 잠룡 증명은 신기루처럼 흐려졌다. 한 위원장은 용산을 향해 눈 흘기며 구조를 탓할지 모르겠다. 맞다. 처음부터 그의 포르투나(운명의 여신의 변덕)는 윤 대통령이었다. 야당이 아니었다. 얼음장 같은 정권심판론을 어느 날 갑자기 ‘야당심판’으로 돌릴 수는 없다. 정권심판의 원인을 뚫어야 했다. 하지만 한동훈 정치의 신선함은 딱 ‘동료 시민’에서 끝났다. 지난 세 장면이 보여준다. 그 점에서 한동훈 정치의 실패다. ‘싸울 때 돋보이는 정치인’의 비르투(자질)는 용산을 향해서도 제대로 작동했어야 한다. 반사이익이 아닌 자기 정치의 동력도 증명해야 했다. 여의도라는 큰 강을 건너기엔 ‘한동훈 정치’는 내용도 결기도 약했다.
김광호 논설위원 lubof@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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