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의 도덕·감정을 읽어내다…인간-동물 거리 좁힌 이 사람

한겨레 2024. 3. 2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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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최고의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발을 추모하며

프란스 드발 미 에머리대 명예교수. 에머리대 홈페이지 갈무리

드발 미 에머리대 교수 3월14일 별세
50년 넘게 유인원의 사회적 행동 탐구
‘침팬지 폴리틱스’ ‘내 안의 유인원’ 등
동물의 마음 보여주는 책 10여권 내
‘사랑으로 관계 맺는 종’ 보노보 알리고
동물의 공감·협동 등 실험 통해 확인

“동물 실상, 과학적으로 알리기만 해도
사람과 사회 바꿀 수 있다고 믿었죠”

이 시대 최고의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발이 세상을 떠났다. 미국 에머리대학은 “동물인지행동학의 개척자이자 다수의 베스트셀러로 이 분야를 세계에 알린 프란스 드발이 14일(현지시각) 스톤마운틴의 자택에서 위암으로 숨졌다”고 최근 밝혔다. 향년 75.

그는 이 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이자 여키스국립영장류연구센터 연구원으로 일했다. 50년 넘게 그가 일관되게 탐구한 주제는 인간의 사촌뻘인 유인원의 사회적 행동의 진화적 기원에 관한 것이었다. 현생인류는 약 500만~700만년 전에 침팬지와 공통 조상에서 분기되었으므로, 침팬지와 그 이전에 분기된 다른 영장류의 사회적 행동의 기원을 쫓는 것은 곧 인간 행동의 진화적 역사를 탐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드발은 1982년 네덜란드 아른헴동물원의 침팬지 집단이 복잡하고 의도적인 사회적 전략(정치)을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 준 책 ‘침팬지 폴리틱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990년대에는 과거 침팬지의 아종으로 여겨져 주목받지 않았던 보노보를 ‘전쟁이 아닌 사랑으로 관계 맺는’ 종으로 알리는 데 기여했다. 이어 평화로운 히피 ‘보노보’와 공격적인 전사 ‘침팬지’를 탐구한 ‘내 안의 유인원’(2005년), 동물의 도덕성을 탐구한 ‘착한 인류’(2013년), 동물의 자의식, 언어, 마음에 대해 쓴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2016년) 등 10권이 넘는 책을 남겼다.

대중적인 과학책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는 꾸준히 논문을 생산한 일급 과학자였다. 구글스콜라 집계를 보면, 학술서와 논문에 2천 회 넘게 인용된 그의 저작 6편 중 3편이 논문이다. 보노보를 만난 뒤 그는 영장류의 평화적 측면에 끌렸다. 경쟁과 지배 같은 ‘침팬지적 성격’ 대신 공감과 협동 그리고 도덕성과 이타주의 등 ‘보노보적 성격’을 다양한 실험을 통해 확인해나갔다.

이 중 2004년 ‘네이처’에 실린 ‘카푸친원숭이가 느끼는 불공정’에 관한 실험은 화제를 모았다. 실험 장면이 포함된 드발의 강연 영상이 유튜브에서 570만회 조회될 정도였다. 그는 원숭이 두 마리에게 작은 돌을 떨어뜨리고, 원숭이가 돌을 주워 건네주면 보상으로 오이를 줬다. 그렇게 수십 번 보상한 뒤, 한 원숭이에게만 오이 대신 맛좋은 포도를 보상으로 줬다. 이를 본 다른 원숭이는 격분해 받은 오이를 집어 던졌다. 원숭이 또한 불공정에 항의하는 도덕적 감정이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이었다.

하지만 그는 과학적 결론에서 성급하게 도덕적 가치를 이끌어내는 경향을 경계했다. 과학자들이 밝혀낸 침팬지의 경쟁과 폭력적 성향이 사회에서 인간 본성의 전부인 것처럼 비쳐지면서 1980년대 신자유주의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작용했다고 그는 여러 차례 지적했다. 그는 ‘착한 인류’에서 “도덕에 대한 과학의 연구를 환영하지만, 인간에게 중요한 가치를 결정해달라고 과학에 요청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과학이 모든 물음에 답을 줄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인간을 속인다’며 종교를 깎아내리는 공격적 무신론을 설파하는 리처드 도킨스 등 과학자들에 대해서도 그는 비판적이었다. 그는 “종교에서 가치를 찾는 수많은 사람을 모욕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라며 “과학은 인생의 의미나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격적 무신론은 과학을 또 하나의 종교로 만들고 있었다. 드발은 20세기 초반 세계를 휩쓴 우생학 열풍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과학의 이름으로 벌어졌다는 점을 자주 상기시켰다.

그의 작업은 때로 일부 과학자에게 인간의 시각으로 동물을 설명하는 ‘의인화’로 비판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원숭이의 키스를 ‘구강 대 구강 접촉’이라고 부르는 게 더 우스꽝스럽지 않느냐”며, 과학자들이 강박적으로 의인화를 경계하는 것은 인간이 동물과 같아지는 것을 두려워 한 ‘인간 우월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요즈음 자주 쓰는 ‘비인간 동물’이라는 말도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인간-동물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봤다. 어떤 속성이 없다는 이유로 수백 만이나 되는 종을 비인간 동물 하나로 뭉뚱그리는 점에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동물권에 관한 드발의 생각은 현실적이면서도 개혁적이었다. 사육 중인 영장류를 대상으로 실험하는 그가 모든 형태의 동물 감금과 이용을 철폐하자는 급진적 주장에 동의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대신 그는 유인원 신체에 물리적 영향을 가하는 침습적 연구에 반대했고, 실험·전시용 침팬지를 구조해 보호하는 세계 최대의 침팬지 구조보호시설인 ‘침팬지보호소’(chimp haven)의 이사로 일했다. 그는 2019년 책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에서 육류 소비를 줄이고 사육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육류 포장지에 바코드가 찍혀 있어 그것을 스마트폰에 스캐닝하면 (독립 기관이 촬영한) 동물의 사육 환경 사진들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을 보고 우리가 직접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이데올로기에 매이지 않았다. 동물의 실상을 과학적으로 알리는 것만으로도 사람과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생전에 “내가 한 일이 있다면, 유인원을 인간과 조금 가깝게 만들기도 했지만 인간을 조금 더 낮추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학술지에 남긴 글은 2022년 ‘사이언스’에 실린 ‘동물의 감정에 관한 질문’이었다. 영국이 문어와 게 같은 두족류, 갑각류를 고통을 느끼는 존재로 보고 동물복지법 적용 대상으로 포함한 직후였다. 그는 “도덕적 지위를 갖게 된 종이 늘어나고 있다”며 “전통적으로 (동물과 인간의) 이해 충돌을 다루던 철학, 윤리학과 동물행동학, 비교심리학의 융합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융합의 장에서 가장 필요한 인물은 다름아닌 드발 자신이었다. 우리는 훌륭한 과학자이자 이야기꾼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인간-동물 윤리의 개척자를 잃어버렸다.

남종영/환경저널리스트·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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