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가치 정확히 따져야 유출범 엄단 가능"

강민우 기자(binu@mk.co.kr) 2024. 3. 2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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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남 사법정책연구원장
통계학 활용 실증연구 강화
법관 업무 전문성 높이고
인력 늘려 경쟁력 키워야
출범 10년 사법부 '싱크탱크'
원격영상·법관 선발제도 등
참신한 제도 변화 이끌어내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지난 25일 경기도 고양시 집무실에서 매일경제와 만난 박형남 사법정책연구원장(64·사법연수원 14기)은 연신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강조했다. 법률적 사고방식이 기본 바탕인 법관은 기성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쉽지만, 참신한 생각은 새로운 시각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사법정책연구원은 사법부의 '싱크탱크'로서 법원의 미래를 선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2014년 3월 10일 출범한 이래 발간한 연구보고서만 183권에 달한다.

박 원장은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낸 사례가 많다"며 지난 10년을 평가했다. '원격영상 재판' '원로법관 제도' '소권 남용 대응' 등이 연구원 보고서를 바탕으로 제도가 개선된 대표 사례다. 법원의 최대 현안인 법조 일원화 시대의 인사 제도 역시 연구원이 수년간 연구해 결론을 내놨다. 그는 "법관 선발 트랙을 법조 경력별로 다변화한 벨기에 방식을 참조했다"고 밝혔다.

그가 올해 주목하는 연구 과제는 기술 유출 사건이다. 연구원은 최근 기술 유출 사건 심리 개선 연구에 착수했다. 현행 재판 방식으로는 적정한 처벌이 어렵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는 "검사가 수사로 확보한 자료를 제출하면 변호사는 회사 측의 부풀려진 수치라고 주장한다"며 "기술의 정확한 가치를 감정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판 절차에서 제3의 공신력 있는 기관에 감정을 의뢰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정확한 가치 산정 없이는 증거가 인정되지 않고 양형 기준 적용도 어렵기 때문에 개선책을 모색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사법 현안에 대해서도 그는 막힘 없이 답을 내놨다. 법원의 경쟁력 약화를 묻는 질문에 그는 "부족한 인력을 생각하면 잘하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2019년 기준 판사 한 명이 처리하는 사건 수가 일본의 3.05배, 독일의 5.17배, 프랑스의 2.36배"라며 "일본과 같은 수준이 되려면 6102명의 법관 증원이 필요하고 독일과 비교하면 1만2390명, 프랑스와 비교하면 4038명의 증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판사들도 더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법관이 한 재판부에 머무르는 사무 분담 기간은 3년도 짧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무 분담 기간을 늘려 장기미제를 줄이고 전문성을 높이는 게 세계적인 흐름"이라고 말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추진 의사를 밝힌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에 대해선 "법률 개정 없이 대법원 규칙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관이 당사자를 불러 질문하는 건 재판의 본질"이라며 "서면에 의문이 있어 말로 물어보려는데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그건 구술주의 원칙과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만 검찰이 수사 기밀 보호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만큼 국회에서 공청회 등을 열고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남은 임기는 '실증적 연구'를 더욱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해외 사례를 통한 비교법 연구는 비교적 잘 이뤄졌지만, 통계를 활용한 분석은 미흡했다는 것이다. 그는 "양형 인자 중 하나가 바뀔 때 형량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1·2심의 형량 차이는 어느 정도인지를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력 부족은 풀어야 할 숙제다. 그는 "법무부 소속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형사사건만 다루는데도 통계학 박사가 10명인데, 연구원엔 통계 전문가가 1명뿐"이라며 "통계 기법을 더 도입하려면 인력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구원은 29일 출범 10주년을 기념해 '플랫폼 경제'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그는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데 기존의 법률 논리가 담기 어려운 새로운 문제들이 등장하고 있다"며 "앞으로 닥칠 문제들을 대비하려면 법원이 먼저 플랫폼 경제를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강민우 기자 / 사진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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