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완공된 볼티모어 브리지, 교각 보호구조물 없었다”

이철민 기자 2024. 3. 2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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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2013년 유조선 충돌한 샌프란시스코 베이 브리지는 교각 펜더 덕분에 피해 없어”
“거대 선박 충돌하면, 골든게이트 브리지·브루클린 브리지 언제든 무너진다” 반론도

26일 총길이가 2.6㎞에 달하는 미국 볼티모어 인근의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키 브리지) 일부가 붕괴된 것과 관련해, 미국의 교량 전문가들은 교각(橋脚)을 보호하는 구조물이 없는 것이 주요 원인인 것으로 본다고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영미권 언론이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교량 전문가들은 키 브리지 붕괴는 만약 교각 주변에 펜더(fender)라고 불리는 보호구조물이 있었으면 선박의 충격을 완충하거나 선박이 부딪친 뒤에도 방향을 틀도록 유도할 수 있었으리라는 점에서 피할 수 있었던 사고로 본다”고 보도했다.

교량 건축 공법에서 이런 펜더는 단순히 교각 둘레에 돌더미를 쌓아놓은 것부터, 나무 판자와 콘크리트로 구성된 링(ring)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또 교각 주변의 해저면 바닥을 높여, 선박이 교각에 충돌하기 전에 멈추게 하는 공법도 있다.

키 브리지 상부의 철근 트러스트 구조물이 크게 무너진 것도, 트러스트의 문제가 아니라 동력을 잃은 화물선 ‘달리’에 부딪힌 교각이 무너진 데 따른 부차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물론 이번 사고와 같이 총톤수가 9만5000톤에 달하는 거대 화물선인 달리 호가 부딪쳤을 때, 이런 펜더가 과연 교각을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이견도 있다. 총톤수(gross tonnage)는 선체의 전체 밀폐 공간에서 갑판 윗부분의 항해ㆍ안전ㆍ추진ㆍ위생 등과 관련된 공간을 뺀 용적톤으로, 일반적으로 선박의 크기를 나타내는 지표다.

피트 부티지지 미 교통부 장관은 사고가 난 뒤에 “어떤 교각 보호장치도 이런 규모의 심각한 충돌을 견디지는 못한다”며 “이 정도 직접적인 충격을 견딜 정도로 건설된 다리는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미시건 대의 토목환경공학 교수인 셰리프 엘-타윌도 데일리 메일에 “교각 보호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하나, 달리호와 같은 크기의 선박 충돌을 견뎌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데일리 메일에 말했다.

그러나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미 교통안전위원회(NTSB)의 제니퍼 호멘디 위원장은 “교량이 어떻게 설계돼야 하는지 잘 알고 있으며, 펜더 시스템은 교량 붕괴 조사의 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6일 대형 화물선 달리 호의 교각 충돌로, 철골 트러스트가 무너져 내린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 모습/미 교통안전위원회 배포 AFP

미국의 공학 전문가들은 “키 브리지에는 눈에 띌만한 펜더 구조물이 보이지 않는다”며 “해수면과 같은 높이에 설치된 아주 작은 보호 장치들이 있지만, 이는 유속에 의해 교각이 부실화되는 것을 막는 정도의 역할을 하며 기껏해야 작은 페리(ferry)의 충돌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 신문에 말했다.

또 키 브리지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작은 원통형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지만, 이는 선박에 수로를 알려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2013년 1월 4만톤 유조선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크고 붐비는 베이 브리지와 충돌했지만, 교각을 둘러싼 콘크리트-나무 펜더와 긁혔을뿐 다리 자체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2013년 1월 7일 총톤수 4만 톤의 유조선이 샌프랜스코-오클랜드 베이 브리지(베이 브리지)를 들이받았을 때에는 교량 자체의 피해가 전혀 없었다. 당시 짙은 안개 속에서, 35만 배럴의 원유를 적재한 길이 229m짜리 유조선 ‘오버시즈 레이마르’호의 우현이 키 브리지의 교각 펜더를 들이받았다. 인명 피해는 없었고, 펜더 구조물에서만 140만 달러의 피해가 발생했다.

이날 베이 브리지는 종일 정상 운행됐고,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수로와 항구들도 전혀 폐쇄되지 않았다. 당시 캘리포니아주 교통국은 미 언론에 “펜더 시스템이 디자인된 의도대로 작동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1980년 충돌 사고 이후 교각 보호장치 강화돼

미국에선 1980년 5월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화물선이 선샤인 스카이웨이 브리지의 교각을 들이박으면서, 다리 일부가 무너졌다. 이때도 교각을 보호할 펜더가 없었다. 이후 건설되는 다리 교각에는 펜더가 설치됐고, 이후 교량 충돌을 흡수할 수 있는 구조물 설치가 관행이 됐다.

1980년 화물선 충돌로 다리 일부가 무너진 뒤에, 화물선으로부터 교각을 보호하기 위해 콘크리트 구조물을 설치한 탬파의 선샤인 스카이웨이 브리지. 2006년 항공사진/탬파 베이 타임스

이번에 무너진 볼티모어의 키 브리지도 1977년에 완공됐다. 미국 전체를 따지면, 62만1581개 다리의 절반 이상이 1980년 이전에 건설됐다.

키 브리지의 연간 차량 통행 대수는 1100만 대를 넘는다. 다리 붕괴로 인한 1일 경제활동 손실비용만 1500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무너진 다리를 복구하기 보다는, 교각 주변을 강화하는 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힌다.

선박이 교각에 충돌하는 것을 사전에 막아주는 원통형 콘크리트 구조물이 교각 주변에 여러 개 설치된 델라웨어 메모리얼 브리지/델라웨어 항만청

미국의 델라웨어 메모리얼 브리지는 작년부터 9300만 달러를 들여서, 교각 주변에 원통형의 콘크리트 보호 시설(protection cells)을 설치하고 있다.

1983년 6월 러시아 볼가강에서 유람선 알렉산드르 수보로프 호가 철교와 충돌하면서 176명이 사망한 것이 최악의 선박ㆍ교량 충돌 사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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