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우칼럼] 2024 금융시장, 미국은 없다

노영우 전문기자(rhoyw@mk.co.kr) 2024. 3. 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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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예외적이다. 지리적 위치, 청교도적 기원, 평등과 차별 금지, 규제 없는 상업 활동 등은 다른 어떤 국가도 흉내낼 수 없다."

1832년 프랑스 사상가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을 방문한 기록을 담은 책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미국을 '예외 국가'로 언급했다.

'미국 예외주의'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글로벌 금융시장이다.

그런데 올 들어 세계 금융시장에서 미국의 예외성과 리더십이 눈에 띄게 위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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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리더십 사라지면서
각국 '각자도생'정책 기승
한국도 국면 전환 모색을

"미국은 예외적이다. 지리적 위치, 청교도적 기원, 평등과 차별 금지, 규제 없는 상업 활동 등은 다른 어떤 국가도 흉내낼 수 없다."

1832년 프랑스 사상가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을 방문한 기록을 담은 책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미국을 '예외 국가'로 언급했다. 미국은 건국부터 전통을 따르지 않고 혁명으로 세운 나라다. 이곳에서 그들은 자유 평등 공화주의 개인주의 민주주의 자유경제 등 미국만의 제도를 만들고 발전시켰다. 토크빌이 '예외성'을 언급할 때 미국은 변방의 약소국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 예외성을 바탕으로 도약했고 현재 정치 외교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세계를 리드하는 강대국이다.

'미국 예외주의'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글로벌 금융시장이다.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내 유통시키는 유일한 나라다. 그들은 세계 금융시장을 달러로 엮었다. 미국이 달러의 양을 쥐락펴락하면 각국 경제가 흔들린다. 1972년 존 코널리 미국 재무장관은 "달러는 우리의 화폐이지만 당신들의 문제"라고 말했다. 오만함까지 묻어나는 미국의 예외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로 회자된다. 이 때문에 미국은 각국의 부러움과 질시를 한 몸에 받는다. 미국은 이런 불만을 '세계 경제 시스템의 안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진정시켰다. 각국이 달러 체제에 따른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미국의 예외성을 인정하는 것은 미국의 능력과 함께 그들이 내세운 명분에 대한 일말의 신뢰 때문이다.

그런데 올 들어 세계 금융시장에서 미국의 예외성과 리더십이 눈에 띄게 위축되고 있다. 원인은 미국이 먼저 제공했다. 미국은 2022년부터 기준금리를 대폭 올리며 달러를 흡수해 글로벌 긴축 국면을 주도했다. 많은 나라들이 미국을 따랐다. 하지만 미국은 올해 들어서는 시장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무척 인색하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변죽만 울린다. 3월에 성장률과 물가가 예상보다 올랐지만 평소 데이터를 중시한다는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금리 인하에 대한 뉘앙스를 계속 풍긴다. 각종 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책임 있는 연준 인사들의 발언도 제각각이다.

시장은 이런 미국의 행태를 곱게 보지 않는다. 세계 경제를 리드하는 통화정책이 미국만 생각하는 정책으로, 더 나아가 올 11월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특정 후보를 의식하는 정책으로 바뀌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세계 경제를 이끄는 리더십은 찾아보기 힘들다. 예외성을 상실한 미국의 통화정책이 다른 나라에 이정표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미국 눈치를 보지 않는 국가들은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브라질과 칠레는 올 들어 기준금리를 1%포인트나 낮췄다. 헝가리는 금리를 1.75%포인트 내렸다. 이스라엘 멕시코 스위스도 금리를 0.25%포인트 낮추면서 미국보다 먼저 금리 인하에 시동을 걸었다. 반면 튀르키예는 금리를 7.5%포인트나 올렸다. 우리나라 주변도 제각각이다. 일본은 금리를 올려 마이너스 금리를 탈피한 반면 중국은 대출 우대 금리를 내려 경기 띄우기에 나섰다. 각국의 '각자도생식' 통화정책은 한층 더 심해질 전망이다.

우리나라 통화정책도 전환기에 직면했다. 한국은행은 2023년 1월부터 15개월 동안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우리나라 통화정책은 정부로부터는 독립했지만 미국으로부터 독립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역설적이지만 지금은 통화정책이 미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할 때다. 미국만 바라보는 '천수답 정책'은 더 이상 곤란하다. 2024년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국은 없다. 한국은 얼마나 준비가 돼 있을까. 사과 가격 잡는 것을 넘어 훨씬 더 큰 그림을 그릴 때다.

[노영우 국제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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