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땜질처방은 그만" 18개 병원 소아청소년과 사직 전공의들, 입 열었다

박정렬 기자 2024. 3. 2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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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대강당에서 열린 대한전공의협의회 2024년도 긴급 임시대의원총회에 참석한 각 병원 전공의 대표 및 대의원이 흰 가운을 입고 있다./사진=(서울=뉴스1) 박정호 기자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세브란스병원 등 대학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사직 전공의들이 27일 호소문을 내고 소아청소년과의 실정과 문제점을 밝히며 정부의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호소문에는 앞선 3개 병원과 강북삼성병원, 건양대병원, 고려대구로병원, 대구파티병원, 부산대병원, 분당제생병원, 순천향대천안병원, 아주대병원, 양산부산대병원, 울산대병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이대목동병원, 전남대병원, 전북대병원, 한림대성심병원 등 총 18개 병원이 이름을 올렸다.

"저희는 전국에 150명 남짓 남아 있었던, 사직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라고 시작되는 글에서 이들은 "10년 이상 전문의들도 낮은 수가 진료를 포기하고, 상급병원은 적자라는 이유로 전문의 고용을 늘리지 않는 현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며 "늘어나는 의료소송과 신고에 폐원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고 운을 뗐다.

그런데도 "세상에 처음 나온 아이와의 눈맞춤, 고열에 시달리던 아이가 회복해 지어주는 미소, 매일매일 성장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보람 등 저울로 잴 수 없는 가치들을 위해" 이 길을 선택했다며 "소아는 저희가 살려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힘든 수련도 버텨왔다"고 이들은 떠올렸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 세브란스 어린이 병원에서 어린이 가족이 진료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사진=(서울=뉴스1) 장수영 기자


지난해부터 시작된 '소아과 오픈런' 사태는 원가보다 낮은 수가와 환자 수 감소로 인한 소아청소년과의 폐업이 원인이라는 게 사직 전공의들의 진단이다. "이미 배출된 전문의들이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정책과 정부의 방임"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이들은 덧붙였다. 이 과정에 지난 2월 정부가 발표한 의대 증원과 필수 의료 패키지는 "'낙수와'라는 오명과 실효성 없는 정책으로 저희의 희망과 자긍심마저 잃게 했다"고 했다.

사직 전공의들은 "소아청소년과는 대부분 국가가 정한 급여체계 안의 진료를 한다"며 "성인과 달리 오랜 시간과 많은 인력, 기술이 필요하지만 현재의 수가체계는 이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 만년 적자로 개원가에서도 대학병원에서도 생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저출산, 지역소멸은 이미 예견된 문제였지만 정부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호소에 귀 기울이지 않고 적극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아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와 부모들의 몫이 됐다"고 이들은 말했다.

2000명의 의대생 중 일부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돼도 이후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는 정책이라는 게 사직 전공의들의 판단이다. 2000명 중 극소수를 10년 동안 기다리는 것보다 "저평가된 수가의 개선과 특수성을 인정하는 정책으로 숙련된 전문의 유입을 시도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라고 이들은 덧붙였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 세브란스 어린이 병원으로 의료진과 어린이 가족이 드나들고 있다./사진=(서울=뉴스1) 장수영 기자


사직 전공의들은 소아청소년과를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환자 수가 감소할 수밖에 없지만 단 한 명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필수 의료"라면서 "진료실과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는 보전을 위한 정책이 동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대상으로 한 월 100만 원의 보조금, 일시적인 수가인상들을 포함해 매일 검증 없이 쏟아내는 정책들은 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고 바라봤다.

이들은 "지금까지 해결하기 어려웠던 문제를 필수 의료 패키지로 1년 안에 해결하겠다는 것은 허황된 꿈이며 지금까지 반복된 실책의 연장"이라며 "여기서 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소아청소년과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임을 알고 있는 저희는 대한민국 의료에 대한 좌절감과 실망감으로 깊은 고민 끝에 사직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방의 의대생을 증원해도 해당 지역의 근무 또는 환자 수가 보장되지 않는 한 일시적인 눈가림일 뿐, 지속될 수 없다"며 "정부는 2000명의 무리한 증원을 고집하는 것보다 증원의 필요성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조속히 실시해 더 이상의 의료 붕괴를 막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사직 전공의들은 "단발성 정책이 아닌 소아청소년과를 비롯해 붕괴를 앞둔 필수의료과들의 특수성에 걸맞은 정책과 보상을 통해 필수 의료를 소생시킬 정책을 논의해주시길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면서 "저희의 사직으로 인해 불안해하고 있을 아이들과 보호자들께 믿음에 보답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장기간의 사직으로 빈자리를 메워주고 계실 교수님들과 전임의 선배님들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들을 포함한 병원의 모든 가족에게 감사와 미안함을 전한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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