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만으론 과잉진료 따른 의료 붕괴 못 막아 [왜냐면]

한겨레 2024. 3. 27. 17:5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서울의 한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영 |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지방 필수의료의 붕괴는 서막에 불과하다. 10년 후면 지방뿐 아니라 수도권의 필수의료도 의료진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예상된다. 이 이슈의 배후에 있는 더 큰 문제이자 한국 의료체계의 근간을 뒤흔들 문제는 의료비 급증이다.

한국의 의료체계는 저렴하게 질 좋은 의료를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아왔으나 더는 그렇지 않다. 작년 평균 의료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수준을 넘었으며, 그 중 가장 빠른 의료비 증가율을 보인다. 의료비 상승은 서민과 저소득층이 중병에 걸렸을 때 파산을 가져올 수 있다. 또 가파른 고령화는 건강보험료의 인상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극단적일 수 있지만 과도한 보험료 부담에 직면하게 되는 소득 상위 계층은 국민건강보험에서 탈퇴해 민간보험에 의존할 우려도 없지 않다.

국민건강보험 제도는 소득 상위 계층이 많은 보험료를 부담함으로써, 소득 하위 계층은 상대적으로 적은 부담으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만일 소득 상위 계층이 보험료 납부를 거부한다면 이 시스템은 완전히 붕괴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의료비가 급증하고 있는 원인을 밝히고 그 원인을 해결하는 대대적인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대표적인 의료비 급증 원인은 과잉진료다. 한국의 2021년 국민 1인당 외래진료 횟수는 오이시디 국가 평균보다 2.6배 많아 1위였다. 병상 수도 오이시디 평균의 약 3배에 이른다. 의료비 가계부담률은 오이시디 7위(2023년) 수준이다. 대형병원의 과잉검사 및 과잉치료가 의료비 급증의 주범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행위별 수가제로 인한 과잉진료와 비급여부문의 과잉진료를 통제하지 못한 탓이다. 그 결과 병원은 급여 부분에서의 적자를 비급여 부분에서 메꾸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과잉진료를 유도하고 있다. 행위별 수가제는 의료행위의 횟수가 많을수록 병원 수익이 늘도록 되어있기에, 의사들은 과잉치료, 과잉검사, 불필요한 입원, 불필요한 임종말기치료, 잦은 병원 방문을 유도해 수익을 높인다. 이는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제도 문제이다.

과잉진료를 부추긴 또 다른 요인은 실손보험제도이다. 실손보험에 든 환자들은 의사가 비급여항목에 대한 과잉진료를 유도해도 쉽게 응하게 된다. 검사와 치료는 더 많이 받을수록, 돈을 많이 쓸수록 좋을 것이라는 환자의 잘못된 인식도 한몫을 한다.

지금과 같은 과도한 의료소비가 계속된다면 의대정원을 늘려도 필수의료 의사 부족은 계속될 수 있다. 의료서비스 이용이 계속 증가하면 의사는 여전히 부족해지고, 비필수의료 인기과 의사들이 비급여항목에 대한 과잉진료로 대박을 터트리는 상황에서 필수의료를 전공하려는 의대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의사들이 3분진료, 심지어 1분진료를 하는 이유는 행위의 횟수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고 진료 면담시간에 따른 가격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1분을 상담하나 10분을 상담하나 가격이 동일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짧게 면담하게 된다. 따라서 면담 시간에 따라 가격을 달리해야 한다. 면담시간에 따라 충분한 수가를 제공하면 의사가 환자에 대한 건강예방교육이나 처방에 대한 신중한 고려와 판단을 가능케 할 것이다. 이는 적은 의료비로 건강증진 효과를 가져오는 제도적 방향이다. 앞으로 의료정책의 중심은 예방의학과 1차의료의 기능 강화로 이동해야 한다. 주치의 제도를 도입해 이들에게 문지기 역할을 맡겨, 불필요하게 대형 병원을 찾거나 과도한 의료서비스 이용을 자제시킬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필수의료의 건강보험 보장성을 더 강화해 실손보험 가입 필요성을 줄여야 한다. 나아가 실손보험이 비급여 비용의 50%만 보상하게 제한할 필요도 있다. 실손보험 비급여 비용의 본인부담을 늘려 의사의 과잉진료 유도에 쉽게 따르지 않게 해야 한다. 비급여항목에 대한 과잉진료로 큰 수익을 올리는 인기과로의 쏠림현상이 완화될 것이다. 실손보험 가입자는 보장성이 축소되지만 그만큼 보험료를 적게 내도록 하면 된다.

현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하면서 의대 정원만 늘리면 과잉진료가 늘어 건강보험재정이 파탄 날 수도 있다. 정부는 의대정원 확대 문제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의료비 급증으로 인한 한국 의료체계의 붕괴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대대적인 제도개혁에 나서야 한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