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띄웠는데 가치주 펀드 환매 속출…밸류업 펀드 성공할까
정부가 저평가 기업의 가치 제고를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가치주 펀드에서는 여전히 자금 유출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치투자에 대한 개인의 무관심과 저조한 수익률, 차별화 부족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의 '코리아 밸류업 펀드' 역시 기존 가치주 펀드와 차별화하지 않을 경우 기존 정책 펀드들처럼 반짝 테마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7일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전날 기준 국내 가치주 스타일 펀드의 설정액은 총 4조8156억원으로 집계됐다. 올 들어 설정액은 1580억원 감소했고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본격화한 최근 한 달 사이에도 831억원이 순유출됐다.
가치주 펀드는 매년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최근 1년 동안에는 5000억원 가량 자금이 빠져 나갔고 5년 전과 비교하면 설정액은 약 4조원 감소했다.
대표적인 가치주 펀드로 꼽히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의 '한국밸류10년투자연금전환형1(주식)C'는 현재 설정액 3834억원으로 연초 이후 120억원 줄었다. 코로나19 이전인 2020년 초만 해도 설정액 5000억원을 넘었지만 코로나19 이후 성장주가 주목받으며 자금 유출이 심화했다.
또 다른 가치투자 명가인 신영자산운용이 운용하는 '신영마라톤[자](주식)C' 역시 연초 이후 90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현재 설정액은 2091억원으로 5년 전 약 5000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가장 큰 원인은 낮은 수익률이다. 가치주 펀드는 주로 PER(주가순이익비율)이나 PBR(주가순자산비율)가 낮은 저평가 기업에 투자하는데 오랜 기간 저평가 요인이 해소되지 않아 밸류트랩에 갇히는 경우가 많았다.
코스피 지수와도 수익률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610개 가치주 펀드의 최근 1년 수익률 평균은 13.65%로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13.36%)와 유사했다. 저PBR 종목들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올해 이후 수익률을 비교하면 가치주 펀드는 2.66%, 코스피 지수는 3.1%로 오히려 시장 수익률보다 저조했다.
펀드의 구성 종목도 코스피 대표 종목들과 큰 차이가 없다. 한국밸류10년투자 펀드의 투자 전략은 '저평가된 주식과 성장잠재력이 있는 주식에 장기투자한다'는 것이지만 주요 구성 종목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삼성바이오로직스, 기아, 현대차, NAVER 등이다. 현재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종목과 거의 유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 보수비용은 1~1.5%대로 코스피 인덱스 ETF(상장지수펀드)보다 높다.
가치투자에 대한 개인의 무관심도 한 몫 한다. 정부가 지난 1월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2월부터 저PBR 종목들의 주가가 크게 올랐다. 하지만 지난 2월 이후 현재까지 개인의 순매수 상위 종목은 NAVER(1조3766억원, 이하 순매수 규모) KODEX 200선물인버스2X(5334억원) 에이피알(2536억원) 엔켐(2437억원) TIGER 미국S&P500(2317억원) 등 성장주나 인덱스 상품이 대부분이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이 아직 개인 투자자들에게 크게 와 닿지 않는 것 같다"며 "개인은 여전히 높은 수익률이 기대되는 성장주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가치주 펀드에 대한 무관심이 바뀌지 않으면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 펀드 역시 흥행하지 못할 수 있다. 정부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업가치 제고에 노력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개발 중이다. 올해 3분기 중 지수 개발을 완료하고 4분기에는 관련 ETF를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역대 정부들 역시 다양한 정책 펀드를 출시했지만 차별화 부족과 정권 교체 등으로 시장의 관심에서 멀어진 사례가 많다. 문재인 정부의 뉴딜펀드나 박근혜 정부의 통일펀드,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펀드 등이 대표적이다.
또 다른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정부가 밸류업 지수를 만든다 해도 기존에 저PER, 저PBR 기업에 투자하는 가치주 펀드와 크게 차별화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결국엔 시장의 관심을 어떻게 모을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사무엘 기자 samue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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