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불안 해방 일지

장윤서 기자 2024. 3. 27.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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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장애, 공황발작, 우울증, 히스테리…지난 15년간 저자가 진단받은 병명
불안장애 치료법, 과학자 자세로 탐구한 기록
불안 해방 일지./윌북

‘불안’이라는 감정에 삶을 갉아먹고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매사 걱정하고, 슬픈 일이 불어닥칠 것 같은 불안정한 감정을 통제하고 극복하기가 어려워서다. 그런 이들에게 이 책은 반가운 소식이다. 책은 불안장애, 공황발작, 우울증 등을 진단받은 저자가 직접 불안을 치료하는 실험용 원숭이 혹은 기니피그가 되기를 자처해 불안 극복에 도전한 이야기다.

신간 ‘불안 해방 일지’는 온갖 불안장애 치료법을 과학자의 자세로 탐구한 기록이다.

저자는 불안과 불안 치료의 권위 있는 연구자와 치료자들과 만나며 자기 불안을 다루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책은 인류가 느끼게 된 불안의 원인, 기원, 역사, 사회구조적 불평 등 문제로 시작했다가, 자기를 대상으로 한 여러 실험적인 치료법과 그 결과를 이야기로 구현해낸다.

이 책은 자기 계발서가 아니다. 난치병인 불안 장애에 대한 과학서나, 의학서도 아니다. 과학 지식과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과 논문 등 출처가 실려 있지만, 다른 무엇보다 이야기에 가까운 책이다. 저자는 “나는 겁쟁이다”라면서 “이 책은 그 사실을 마주하는 법을 배우는 책”이라고 표현했다.

책은 저자의 1년간의 불안 치료를 위한 도전기를 다룬다. 그는 마흔 번째 생일에, 분야를 막론하고 불안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연구를 하는 사람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다. 이들이 밝혀낸 것들을 최대한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실험을 진행한 것이다. 세계적인 신경과학자 조지프와 르두와, ‘스트레스’를 처음으로 정의한 한스 셀리에를 포함해 일생에 불안과 공황을 연구한 사람들을 찾아나선다. 직접 인터뷰하거나 논문을 섭렵하며 몇몇 해결 방법을 자기 몸에 시도해본다. 항우울제 설트랄린 복용부터 냉수욕, 명상, 전기자극 등 다양한 치료법을 적용한다.

저자에게 불안은 무엇일까. 그에게 불안이란 곧 도피해야 한다는 신호였다. 불안은 본래 회피성 장애다. 자동차에 설치된 근접 센서처럼 어떤 대상과 곧 충돌할 것 같은 상황을 경고한다. ‘삐삐’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더 크고 빠르게 울린다. 그러면 인간은 회피 행동을 취한다. 불안이나 걱정 혹은 ‘겁’은 인간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질병적인 차원에서의 불안은 대체로 기능장애·역기능적 의미로 사용한다. 장기적이고 파괴적이며 강렬한 두려움과 걱정을 가리킨다. 불안이 유용한 자극이 될 수도 있다. 예컨대 회사에 지각하고 싶지 않다면 이제 일어나야 한다는 경고다. 하지만 기능장애적 불안은 계속 머릿속에서 비상벨이 울리고, 경고등이 켜지며, 팝업창 메시지를 띄우는 끝나지 않는 오페라다.

책에서는 저자가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운동요법, 냉수욕, 최면 요법, 이야기 치료, 식단 관리 등 다양한 실험과 연구 내용을 소개한다. 저자는 영하 2도 날씨에 강물로 뛰어들고 환각 트러플을 넣은 땅콩버터 샌드위치를 먹는 등 기이한 시도를 하기도 하고, 아모라테라피와 커다란 가죽 의자를 준비하고 최면 치료에 나서기도 했다.

저자는 삶에서 극도의 불안을 자극한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이야기의 힘’이 있다고 말한다. ‘지금껏 살아오며 감정을 가장 동요하게 했던 경험’이나 혹은 ‘개인에게 깊은 영향을 남긴 일’ 등을 스스로 글로 적는다.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 안에 깊은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반복되는 슬프거나 고통받는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야기를 하는 행위 자체가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구성해가는 행위가 핵심이다. 저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이야기를 이대로 고수하며 살겠다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불안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특정한 사건 혹은 불편한 이야기를 거듭 반복하는 반추 행위에서 그치지 않고, 과거의 경험에서 새로운 면을 찾아서 이해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이를 위한 강력한 장치는 ‘나’라는 1인칭 대명사를 ‘그, 그녀’라는 3인칭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관점을 바꾸듯, 자신의 이야기를 바꾸는 것이다.

수많은 시도와 실패를 경험하던 저자는 어느새 불안으로부터 해방됐다. 책에서 저자는 불안을 “이제는 자책하는 대신 어려움을 마주한다는 증거로 여기겠다”고 말한다. 불안을 완벽히 치료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통제 가능한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게 저자 생각이다. 불안이라는 불편한 감정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 현재 불안에 관한 과학 연구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등을 살펴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팀 클레어 지음ㅣ신솔잎 옮김ㅣ윌북ㅣ484쪽ㅣ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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