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 지원금 더 받으려다 홧병 날 뻔…그냥 요금을 내려라

김재섭 기자 2024. 3. 27. 11:4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재섭 기자의 뒤집어보기
이통사 누리집서 서너시간 발품 끝에 깨달은 건 ‘그냥 호갱이 되자’
이통사 관계자 “불가능한 거야! 그냥 유통점 가서 도움받으라고 해”
전환지원금을 50만원까지 합법적으로 줄 수 있게 된 첫 날 오후 서울의 한 휴대전화 판매점의 모습. 연합뉴스

사용 중인 단말기에 문제가 생겨 바꿔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이동통신사가 주는 지원금을 더 많이 챙겨 단말기 교체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가진 가입자 처지를 가정해 이동통신사들이 공시한 공시지원금과 전환지원금을 다시 꼼꼼히 살펴봤다. 공시지원금은 단말기 유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제공돼온 단말기 지원금(보조금)이다. 공시 절차를 거쳐 준다고 해서 공시지원금으로 명명됐다. 전환지원금은 지난 14일 새로 도입된 것으로, 번호이동을 통해 사업자를 옮길 때 발생하는 위약금이나 단말기 교체 비용 등을 최대 50만원까지 지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결론은 ‘속 터져 죽을 뻔 했다’다. 결국 서너시간만에 ‘쌍욕’을 내뱉으며 포기했다. 이런 걸로 국민 통신비 절감 위해 노력했다고 생색을 내는 정치인이나 정부 정책당국자들이 있다면, ‘직접 해보고 말씀하시라. 홧병 나 쓰러질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떻게 하면 단말기 지원금 더 받을까?’…시도 순간 속 터진다

우선 이동통신사 누리집(홈페이지)에서 전환지원금 공시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동통신 3사 모두 홍보실 관계자의 도움을 받고서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또한 단말기 교체 시 함께 살펴보고 비교해봐야 할 공시지원금, 전환지원금, 선택약정할인(월 정액요금의 25% 할인) 공시·설명이 따로 떨어져 있다. 복잡한 표로 돼 있는 공시 자료를 함께 띄워놓고 볼 수 있는 대형 모니터를 사용하거나, 모니터 2개를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아니면 종이 문서로 인쇄해서 볼 수 밖에 없다.

이동통신사는 물론 가입자 쪽에서도 전환지원금은 또다른 공시지원금일 뿐이다. 폐지 방침을 밝혔지만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는 단말기 유통법을 피해 단말기 보조금 경쟁이 좀더 활성화할 수 있게 하겠다며 ‘구멍’을 만든 게 전환지원금이다. 결국 이동통신사와 가입자 쪽 모두 공시지원금과 전환지원금 각각이 아닌 ‘공시지원금+전환지원금’ 형태로 비교해봐야 한다. 이동통신사가 단말기 지원금을 더 써 가입자 수를 늘릴 의향이 있으면, 그냥 공시지원금을 늘리면 된다.

전환지원금이 생기면서, 가입자들은 단말기를 바꿀 때 한차원 높은 방정식을 풀어야 하게 됐다. 이전에는 공시지원금과 선택약정할인(0.25(요금할인 25%)x24(약정기간)) 혜택을 비교해 유리한 쪽을 선택하면 됐다. 목돈이 없는 경우에는 공시지원금 혜택이 좀 적어도 할부로 산다 생각하며 선택하고, 교체를 원하는 단말기의 공시지원금을 비교해 다른 사업자가 더 많이 주면 장기가입할인과 가족결합할인 혜택 등을 살펴 옮겨갈 지 말지를 선택하면 됐다.

절차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른 사업자로 옮겨갈 지를 결정할 때 ‘공시지원금+전환지원금’을 보는 것만 달라졌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니 무척 복잡해졌다. 이동통신사들이 단말기 기종과 요금제별로 공시지원금과 전환지원금을 따로 책정하는 방식으로 복잡하게 만들어서다. 예를 들어, 27일 현재 에스케이텔레콤(SKT) 공시지원금은 갤럭시S24가 가장 높고, 전환지원금은 갤럭시S23과 갤럭시Z 폴드5가 최고액(이하 각각 최고가 요금제 가입 기준)이다. 갤럭시S24는 전환지원금 지원 대상에서 아예 빠져 있다. 케이티(KT)와 엘지유플러스(LGU+)도 이처럼 공시지원금과 전환지원금이 많이 책정된 단말기 기종이 엇갈린다. 케이티는 갤럭시S22와 갤럭시Z 폴드4·폴드5·플립4, 엘지유플러스는 갤럭시S23과 갤럭시Z 폴드5의 전환지원금이 각각 가장 높다.

요금·지원금 설계 원칙 “경쟁사와 비교되지 않게 하라”

최신 프리미엄 단말기를 써보기 위해 발품을 팔고 있는데, 전환지원금은 엉뚱하게 비인기 단말기나 구형 단말기에 더 많이 태워지고 있는 꼴이다. 이동통신사들은 지난 16일 전환지원금 최고액을 각각 10만~13만원으로 책정해 공시한 뒤 23일 최고액을 30만~33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는데, 상향된 전환지원금 재원 가운데 상당부분을 삼성전자가 구형 모델 재고 소진 및 특정 모델 판촉 차원에서 지원한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게 한다.

더욱이 이동통신사들은 공시지원금과 전환지원금을 각각 매일 조정할 수 있다. 이동통신 3사와 삼성전자·애플의 마케팅 전략에 따라 공시지원금과 전환지원금이 매일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가입자 쪽에서 보면, 전환지원금 도입 뒤부터 한차원 높아진 방정식(어떤 선택을 하는 게 유리한 지)을 빨리 풀어야 하고, 특히 바로 실행(개통)에 옮겨야 한다. 열심히 발품 팔아 답을 구했는데, 다음 날 아침 사업자들이 재고 단말기 소진이나 단말기 제조사의 요구 등에 따라 지원금 공시를 바꾸면 말짱 ‘꽝’이 된다.

한 통신사 전직 임원은 “통신사들의 요금 설계 기본 원칙은 경쟁 사업자와 비교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공시지원금과 전환지원금 역시 경쟁 사업자와 비교돼, 가입자들이 번호이동을 선택하게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왜 공시지원금과 전환지원금을 함께 보게 하지 않고 따로 떨어트려 놨느냐?”는 한겨레 질문에 “전산 준비가 안됐다고 누누이 얘기하지 않았냐”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이동통신사 팀장은 ”어떤 선택을 해야 지원금을 더 받을 수 있는지, 개인은 절대 못한다. 유통점에 가서 전문가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이동통신 시장이 포화돼 제로섬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상태다. 이동통신 3사 어느 곳도 단말기 지원금 레이스를 원하지 않는다. 지금 상황에서 레이스를 벌이는 것은 투자자 쪽에서는 배임이 된다”고 말했다.

이동통신사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고생만 할 뿐 얻어지는 것은 없으니, 괜한 헛고생 하지 말라는 것이다. 서너시간 품을 팔아본 경험으로도 이 말이 맞다. 정부와 정치권이 앞세우는 ‘전환지원금 최대 50만원’, ‘단말기 유통법 폐지’, ‘단말기 지원금 경쟁 활성화를 통한 가계통신부 부담 완화’ 등에 현혹되지 말고, 그냥 이동통신사의 ‘호갱’을 자청하는 게 가장 편하다.

합리적 소비자 자세를 갖든가, ‘호갱’이 되던가

이게 싫으면 합리적인 소비자 자세를 가지면 된다. 우선 단말기는 새 모델이 나왔을 때가 아니라 필요할 때 교체한다. 여기서 필요할 때란 새 단말기에 추가된 기능이 꼭 필요하거나 사용하던 단말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다. 또한 무조건 최신·최고 사양이 아닌 내게 필요한 성능을 살펴 고른다. 출시된 지 1~2년 지나, 제조사가 재고 소진 차원에서 지원금을 많이 태운 것으로 고르는 것도 괜찮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스마트폰을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영상·사진을 찍어 공유하는 정도로 활용하면서 남한테 보여주기 위해 100만원대 중·후반 가격대 최신 프리미엄 단말기를 고르며 지원금을 더 받기 위해 애쓰는 경우도 많다”며 “그러다 보니 조삼모사 격으로 월 정액요금이 올라가고, 가입자들은 호갱이 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동통신 유통점을 찾아갈 때는, 내가 필요로 하는 성능의 단말기 기종 2~3가지를 미리 정해둬야 한다. 원하는 단말기 모델을 제시한 뒤 가장 싸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물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유통점 직원과 상담하기 시작한 지 채 10분도 안돼 ‘고가 단말기+고가 요금제’로 선택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저런 혜택을 앞세우거나, ‘그런 단말기 들고 다니면 남들이 웃어요’라며 선택을 바꾸게 유도한다. 유통점 쪽에서는 가입자를 ‘고가 단말기+고가 요금제’에 가입시켜 이른바 ‘객당 단가’를 높여야 이동통신사로부터 받는 가입자 유치·유지 수수료(장려금·리베이트)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유통점은 이를 위해 각각 공시지원금과 전환지원금의 15%에 해당하는 추가지원금을 주기도 한다.

결국 합리적 소비자 자세를 갖는 것을 빼고는, 이동통신사 누리집에서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별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아울러 정치권의 통신비 절감 공약과 정부 통신비 절감 정책 역시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측면에서는 별 효과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총선 공약·정부 정책도 헛짓?…차라리 선택약정할인율 상향을

이동통신사 관계자들에게 ‘비록 선거를 앞두고 있어 좀 그렇기는 하지만, 정부도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를 위해 나름 애를 쓴 셈인데, 직접 해보니 머리만 아프고 효과도 없을 것 같다. 실질적인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방안은 없는 것이냐?’고 툭 터놓고 물어봤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회사와 본인 모두 익명을 전제로 “현재 25%로 돼 있는 선택약정할인율을 끌어올리면 된다. 아니면 선택약정할인율을 없애고, 그 비율만큼 모든 요금제의 월 정액요금을 내리면 된다”고 말했다.

방법도 있다고 했다. 다른 이동통신사 임원은 “전기통신사업법 제3조(역무의 제공 의무 등) 3항에 ‘전기통신역무의 요금은 전기통신사업이 원활하게 발전할 수 있고 이용자가 편리하고 다양한 전기통신역무를 공평하고 저렴하게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고 돼 있다. 가장 많은 가입자를 가진 에스케이텔레콤의 경우, 지난해 1조7532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둬 성과급·배당 잔치에 나섰다. 정부가 단말기 지원금 경쟁 활성화를 밀어부치는 정도의 의지만 가지면, 이동통신 요금 인하를 충분히 이뤄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오는 28일 ‘가계통신비 부담완화 정책 성과 및 향후계획’ 브리핑을 할 예정이다. 그동안 제4 이통 사업자 선정, 30만원대 중저가 단말기 출시 유도, 3만원대 요금제 출시 유도, 단말기 유통법 폐지 추진, 전환지원금 도입 등의 성과를 앞세울 것으로 보인다. 총선도 앞두고 있고 하니, 향후 계획으로 선택약정할인율 상향 등 좀더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해보겠다는 발표를 기대해본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