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유성호텔

김재근 선임기자 2024. 3. 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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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온천의 역사는 조선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성호텔은 해방 후 이승만 대통령과 신익희, 조병옥, 장면, 김종필 등이 자주 머물렀다.

봉명관, 만년장과 함께 일제 강점기 유성의 3대 숙박시설이었던 유성호텔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109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온천도시 유성의 상징이지만 호텔업계 불황의 그림자를 피해가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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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근 선임기자

유성온천의 역사는 조선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394년 태조 이성계가 새로운 도읍지로 거론되던 신도안으로 가던 중 여기서 목욕을 했고, 그의 아들 이방원도 여기를 들렀다고 한다. 조선 초기 권신 한명회가 공주의 온정(溫井)으로 목욕을 하러 갔다는 기록도 있다.

유성에 근대적인 온천시설이 등장한 것은 일제 때이다. 온천을 유달리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이곳 온천수에 라듐 성분이 있다는 점을 알고 휴양지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라듐은 항암과 피부질환, 신경통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1907년 일본인이 지은 봉명관을 필두로 만년장, 승리관 등의 숙박시설이 잇따라 들어섰다. 1905년 경부선 개통으로 대전역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하고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유성온천을 찾는 사람이 크게 늘어났던 것이다.

만년장은 일제 때는 일본 관리들이, 5.16후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자주 찾았다. 만년장은 리베라호텔로 바뀌었다가 폐업하고 현재는 주상복합건물로 개발 중이다. 봉명관은 군인들이 이용하는 계룡스파텔로 바뀌었다. 스파텔은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등 역대 대통령이 이용했다. 국군휴양소로 보안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유성호텔의 전신은 공주갑부 김갑순이 세운 승리관이다. 그는 1915년 땅을 뚫어 온천을 개발하고, 1918년에는 일본인이 세운 봉명관, 만년장과 경쟁이라도 하듯 거금을 투자해 호텔을 개관했다. 유성호텔은 해방 후 이승만 대통령과 신익희, 조병옥, 장면, 김종필 등이 자주 머물렀다.

봉명관, 만년장과 함께 일제 강점기 유성의 3대 숙박시설이었던 유성호텔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109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온천도시 유성의 상징이지만 호텔업계 불황의 그림자를 피해가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이 자리 일부에 호텔도 세운다고 한다. 2028년까지 주상복합 2개 동 외에 호텔도 1개동을 짓는다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서 1970~80년대까지 명성을 날린 유성온천은 이제 도심 한가운데 묻혀 기능과 위상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조선조 왕과 역대 대통령이 즐겨 찾던 온천도시 유성의 자랑스런 역사와 문화가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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