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의미를 묻는다[편집실에서]

2024. 3. 2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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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수 주간경향 편집장



가수 구하라씨는 2019년 11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느새 4년이 훌쩍 넘었네요.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구하라란 이름을 찾고 있습니다. 그를 추모하는 공간이 아니라 국회에서 말입니다.

구씨는 사망한 뒤에도 편히 쉬지 못했습니다. 20년 전 곁을 떠난 친모가 사후에 나타나 상속권을 주장하면서 남은 사람 간 분쟁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구하라법’에 관한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양육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부모는 상속에서 배제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구씨의 사연이 알려지고 여야 의원과 정부가 잇따라 구하라법(민법 개정안)을 쏟아냈습니다. 2021년 4월 정부가 발표한 제4차 건강 가정 기본계획에도 관련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그러나 구하라법은 올해로 4년째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구씨뿐만 아니라 소방공무원과 선원 등이 사망한 뒤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잇따랐습니다. 이후 ‘공무원, 군인, 선원을 위한 구하라법’은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정작 민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사회적 공감대는 이미 충분히 얻었습니다. 2020년 3월 관련 민법을 개정해 달라는 입법 청원에 10만명 이상이 서명했습니다. 다만 핵심 쟁점을 두고 이견이 있습니다. 부양의무 위반을 ‘결격사유’로 두느냐, ‘법원의 선고를 통해 상실하느냐’라고 합니다. 어떤 안이 입법되더라도 실무적 절차는 거의 차이가 없을 것이고, 법적 효과도 같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자식을 버리고 떠난 사람은 아예 가족으로 보지 않을 것인지, 일단 가족으로는 보되 상속권 상실은 법원의 판단에 따를 것인지가 다릅니다.

상속제도의 유류분 제도도 맞물려 있습니다. 유류분은 상속재산의 ‘의무 할당분’을 말합니다. 현행법상 생전에 유언을 통해 자신을 버린 생모에게는 유산을 한 푼도 주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더라도, 생모는 전체 상속재산의 16.7%를 무조건 가져갈 수 있습니다. 민법은 부모의 유류분을 법정상속분의 3분의 1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유류분 제도를 두고 헌법재판소의 위헌심판이 진행 중입니다.

주간경향 1571호는 아직 국회에 머물러 있는 구하라법을 표지 이야기로 다뤘습니다. 해당 민법 개정안이 처리되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보고 제시된 절충안도 살펴봤습니다. 구하라씨 유족의 법률대리인으로 2020년 구하라법 입법 청원을 한 노종언 변호사도 만났습니다.

구하라법의 의미는 단순히 상속 문제에만 있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유족들은 가족을 버린 사람이 어떻게 법적으로는 가족으로 묶여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 물으며 울분을 토합니다.

이번 호 표지는 구하라씨가 생전에 인스타그램에 올린 그림입니다. 노 변호사를 통해 오빠 구호인씨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림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습니다. ‘I Love you but you make me so sad’(나는 너를 사랑하지만, 너는 나를 매우 슬프게 한다).

홍진수 편집장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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