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본 ‘댓글부대’, 정의구현 아닌 직업인으로서 기자…언론사 고증도 으뜸[SS무비]

함상범 2024. 3.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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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발간한 장강명 작가의 소설 '댓글부대'의 가장 큰 강점은 현실감이다.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이 모티브인 원작은 뛰어난 취재력을 바탕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유흥업소 종사자와 손님 간의 대화, 정치경제 권력자들의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묘사했다.

기자가 나오는 작품이면 으레 투철한 정의감으로 악과 싸우는 형태로 진행되기 마련인데, '댓글부대'는 기자를 직업인으로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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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스틸컷. 사진 | 에이스메이커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2015년 발간한 장강명 작가의 소설 ‘댓글부대’의 가장 큰 강점은 현실감이다.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이 모티브인 원작은 뛰어난 취재력을 바탕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유흥업소 종사자와 손님 간의 대화, 정치경제 권력자들의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묘사했다.

소재가 가진 힘은 분명하지만, 임상진 기자(손석구 분)와 찻탓캇(김동휘 분)의 인터뷰가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노골적인 유흥업소 장면을 어떻게 영상에 담을 것이냐가 영화화의 어려운 숙제였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걸 어떻게 대중 영화로 만들어?”라는 질문이 충분히 나올 법 했다.

안국진 감독은 27일 개봉한 ‘댓글부대’에서 원작의 정서는 유지하되 영상미를 바탕으로 스타일리시하게 풀어냈다. 세련된 색감이 곳곳에서 전해졌다.

여기에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분별할 수 없는 결말로 관객에게 혼란스러운 질문을 던졌다. 각 인물을 적절히 안배하되, 서스펜스는 살리면서 상업영화로서 피해야 할 것들은 피해가는 묘미를 보였다.

‘댓글부대’ 스틸컷. 사진 | 에이스메이커


무엇보다 언론사 시스템에 대한 고증이 뛰어나다. 인물 간 대사 속에 기자들만이 아는 용어를 적절히 녹여냈다. 어떤 회의를 거쳐 기사 방향과 시점이 결정되는지도 정확히 보여준다. 이제껏 나온 드라마나 영화를 통틀어 언론사 사무실을 가장 그럴듯하게 그렸다. 취재 기자가 사진기를 메고 다니는 어색한 모습이 아예 없다.

기자가 나오는 작품이면 으레 투철한 정의감으로 악과 싸우는 형태로 진행되기 마련인데, ‘댓글부대’는 기자를 직업인으로 강조했다. 임상진이 만전그룹을 취재하는 이유가 자신의 이름값을 높이기 위한 대기업이기 때문이고, 여론조작 조직 팀알렙 기사를 꼭 쓰고자 하는 이유도 복직이 목적이다. 정의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를 움직이는 동력은 개인의 영달이다.

임상진을 맡은 손석구는 이야기의 화자로서 작품을 이끈다. 특유의 낮은 텐션을 유지하면서도 긴박감을 놓치지 않는다. 관객이 그에게 완전히 이입하지도, 그렇다고 놔버릴 수 없는 묘한 거리감을 유지했다. 그 어떤 배우보다 기자에 대한 고증이 철저했다. 특히 취재원을 대할 때 태도가 사실적이다.

‘댓글부대’ 스틸컷. 사진 | 에이스메이커


여론조작 조직인 팀 알렙은 ‘댓글부대’의 메인 요리다. 상대적으로 사회성이 좋은 찡뻣킹(김성철 분)이 영업을 맡고, 찻탓캇은 핵심을 찌르는 문장을 만들었다.

사회에선 생산성 없는 낙오자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대형 스피커인 팹택(홍경 분)은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가짜뉴스를 퍼뜨렸다. 세 사람의 모습이 한몸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안 감독은 팀 알렙이 목표를 정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알기 쉽게 펼쳐냈다.

김성철과 김동휘는 절제하는 태도로 극의 중심을 잡으며, 홍경이 톡톡 튀며 날뛰는 구조다. 욕설을 적당히 섞어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혈기 왕성한 20대를 자연스럽게 그려냈다. 예상못한 사건이 터진 후 감정의 진폭이 커지는 과정에서 홍경의 표현력이 잔상에 깊게 남는다.

영화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권선징악의 구도를 벗어났다. 팀 알렙이 과연 악인지를 떠나, 이들이 실재하는지 모호하게 표현했다. 활짝 열어젖힌 열린 결말이다. 임상진이 진실을 알았는지, 무엇이 진실인지 나오지 않으며, 악의 존재도 불분명하다.

‘댓글부대’ 스틸컷. 사진 | 에이스메이커


대중영화로서 댓글부대가 존재한다고 규정하는 점이 부담스러울 수 있고, 원작과 같은 배드엔딩 역시 상업성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이해되는 결말이다. 다만, 일반 관객이 흔히 경험할 수 없는 형식이라 다소 찝찝함이 남는다. 생경한 맛이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곱씹다 보면 단맛이 퍼져나온다. 가짜가 진실 사이에 숨어 상처를 내고 파는 것이 진짜 현실이니까. intellybeast@sportssoe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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