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결의에 방미 취소… 더 멀어진 바이든·네타냐후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2024. 3. 27.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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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휴전 촉구’ 결의안 첫 채택… 거부하던 美, 이번엔 기권

이스라엘은 25일 자국 고위급 대표단의 미국 방문 일정을 전격 취소했다.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와의 즉각 휴전을 이스라엘에 촉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되자 이에 반발한 것이다. 전쟁 협의를 위해 이스라엘 대표단 파견을 요구해왔던 백악관이 즉각 “매우 실망스럽다”고 맞받으면서 양국은 다시 한번 공개 충돌했다. 가자지구 내 군사작전 수위와 민간인 보호 문제 등을 놓고 이견을 표출해왔던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공개 설전을 벌인 데 이어 이번엔 고위급 협의가 파행으로 치달으면서 양국 간 파열음은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좌),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우). /조선일보db

이날 오전 유엔 안보리는 15개 이사국이 참여한 표결에서 미국이 기권한 가운데 14국 찬성으로 휴전 결의안을 채택했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안보리가 채택한 최초의 휴전 요구 결의안이다. 이슬람 금식성월인 라마단 기간(3월 10일~4월 9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 조건 없는 인질 석방을 요구하는 내용 등이 결의안에 포함됐다.

유엔 내에서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최고 기관인 안보리에서 결의안이 통과되려면 15개 이사국 중 9국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상임이사 5국(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어느 한 곳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 미국은 지난 2차례 거부권을 사용해 휴전 결의안을 제지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미국과 카타르 등의 중재로 휴전·인질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데 즉각 휴전을 하라는 건 협상 타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날 미국은 결의안이 통과되도록 기권으로 방향을 틀었다. 3만명 이상의 가자지구 내 민간인이 사망하면서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 아랍계 유권자들의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되는 상황을 의식한 조처란 분석이다. 극우 세력과 이룬 연정을 무너뜨리지 않으려는 네타냐후가 피란민이 대거 몰린 가자 최남단 도시 라파에 대한 지상전 강행 의지를 꺾지 않으면서 양국 간 갈등은 더 커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바이든·네타냐후가 국내의 ‘정치적 역풍’을 헤쳐 나가는 와중 두 지도자 간 균열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고 했다.

이번 결의안에는 휴전을 하지 않았을 경우 이스라엘이 받게 될 제재는 명시되지 않았다. 다만 안보리 결의안은 국제법상 구속력을 지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휴전하지 않을 경우 국제 사회의 압박 수위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스라엘은 “(안보리 결의안이) 인질을 석방하지 않아도 휴전할 수 있다는 잘못된 희망을 하마스에 줬다”며 강력 반발했다. 네타냐후와 바이든은 지난 18일 통화에서 이스라엘이 라파 공격에 나서기 전 미국에 대표단을 파견해 민간인 희생자를 최소화할 작전 계획을 협의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총리실은 이날 성명에서 “미국의 ‘입장 변화’를 고려해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에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당혹스럽고 매우 실망스럽다”고 했다. 그는 “(라파에) 150만명의 민간인이 피란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스라엘의) 라파 지상 공격을 옳은 행동 수순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바이든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동맹국인 이스라엘의 ‘자기 방어권’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왔다. 개전 초인 지난해 10월 18일 이스라엘을 찾은 바이든은 네타냐후와 공항에서 만나 포옹을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네타냐후의 강경한 태도 때문에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협정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둘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지난 9일 바이든은 네타냐후의 고집이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을 악화시키고 있다며 “네타냐후가 이스라엘을 돕기보다는 해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네타냐후는 이튿날 미 언론 인터뷰에서 “(바이든이)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그곳(라파)으로 간다”고 했다.

한편 11월 대선에서 바이든과 맞붙을 가능성이 높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이스라엘 매체 ‘이스라엘 하욤’ 인터뷰에서 “여러분(이스라엘)은 국제 사회에서 상당한 신뢰를 잃고 있기 때문에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의 건물들을 폭격하는 사진들을 보며 ‘너무나 끔찍한 초상’이라고 생각했다”고도 했다. 미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의 ‘종전’ 발언은 대선 국면에서 바이든이 아랍계 유권자들의 반발에 직면하는 상황에서 나왔다”고 했다. 친이스라엘 발언을 이어왔던 트럼프가 입장을 바꿔 종전 압박에 나선 건 아랍계 유권자들의 표심을 끌어들이겠다는 의도란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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